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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 따스하다, 이 목소리들
방송작가 신혜원씨 주축으로
성우들 재능기부 무대 7년째
28일 자선공연‘ 방귀 뀌는…’

뮤지컬에 버무린 전래민담
다문화 가정 보육원생 후원
“제작비 부족해도 보람 크죠”


‘쿵푸 팬더’의 대장늑대가 ‘연출’을 맡고,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던 목소리는 무대를 호령한다. ‘호빵맨’이 ‘방귀뀌는 며느리’가 되고, ‘방구대장 뿡뿡이’ ‘장금이의 꿈’ ‘도라에몽’ ‘명탐정 코난’ ‘유희왕’과 영화 ‘아바타’ 속 낯익은 울림들이 무대를 가득 채운다.

‘우리 시대 목소리’들이 스튜디오를 벗어나 공연장에 나섰다. KBS와 EBS, MBC, 대교방송, 투니버스 등 지상파와 케이블TV의 공채 출신 성우들이 오는 28일 서울 대방동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여성플라자 아트홀 ‘봄’에서 연극 ‘방귀 뀌는 며느리’를 공연한다. 연기는 물론 극작부터 연출이나 무대감독, 소품 하나하나까지 공연의 처음과 끝을 성우들만의 힘만으로 오롯이 채운 작품으로 2006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자선공연 시리즈다.

“7년 전 제가 참여하고 있던 KBS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여성 노숙인들의 현실을 다루는 꼭지가 있었습니다. 연사로 섭외했던 전문가로부터 여성 노숙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운 마음에 김치며 밑반찬을 해 쉼터로 싸가지고 갔다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결심을 하고 공연을 만들게 됐습니다.”

28일 자선공연을 갖는 김승태, 신혜원, 정현경, 김래환씨(왼쪽부터).

내로라 하는 성우들이 자선공연의 한뜻으로 모여들게 된 것은 방송작가 신혜원(48) 씨의 힘이다. 공연의 ‘대모’ 격이다. 여성 노숙인들의 자활과 쉼터 건립 등을 위해 가수들을 초빙해 공연을 벌여오던 신 씨는 몇 년 전부터 아예 성우들을 모아 독자적인 공연 프로젝트팀을 만들어 암으로 부모를 잃은 소년소녀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오고 있다.

지난해엔 ‘향단이 날다’라는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이번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과 보육원생들을 객석에 초청하고 일반관객에겐 관람료를 받아 후원금으로 쓸 예정이다. 이번 작품은 시도 때도 없이 방귀를 뀌다 시어머니의 미움을 받던 며느리가 오히려 방귀로 집안에 복을 불러오게 됐다는 전래 민담에 춤과 노래를 더해 뮤지컬로 만들었다. 종이접기 명인인 김영만 씨가 무대를 도왔고, 대형 스크린으로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영상도 더했다.

“평소에 마음 맞던 동료들을 모았죠. 다들 ‘재능기부’에 뜻을 가진 친구들이었는데, 마땅한 자리를 찾은 거죠. 다들 사비와 사생활을 쪼개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성우들 중에는 무대에 대한 열망을 가진 이들이 많아서 힘들지만 즐기면서 하고 있어요.”

‘우리 시대 목소리’들이 28일 자선공연으로 따뜻한 나눔을 실천한다. 사진은 무대를 채울 성우들의 작품들. (왼쪽위부터 시계방향)방귀대장 뿡뿡이, 도라에몽, 호빵맨, 장금이의 꿈, 아바타, 독수리 오형제, 쿵푸팬더, 명탐정 코난, 유희왕.

지난해에 이어 연출은 김승태(44ㆍKBS 성우 공채 25기) 씨가 맡았다. 애니메이션 ‘쿵푸팬더’와 시사생활정보프로그램 ‘무한지대 큐’의 목소리로 활약했고, 영화 ‘조선명탐정‘과 ‘풍산개’ ‘부러진 화살’ ‘올드미스 다이어리’에는 직접 배우로 얼굴을 내밀었다. 동료 성우 정현경(39ㆍKBS 26기) 씨와 부부다. 부인 정 씨 역시 4년째 내리 공연에 참여하고 있다.

“12명의 성우들이 지난 3월부터 두 달째 주말마다 사흘씩 연습해 오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야 주말에도 함께할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아요.”

김래환(40ㆍKBS 28기) 씨는 지난해에는 간식담당이었다가 올해는 조연출 및 무대감독으로 나섰다. 이동통신사 CF 속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내레이션과 최근 인기를 끈 ‘편파중계’ 콘셉트의 광고 속 목소리 주인공으로 수 년간 ‘TV유치원’에서 출연했으니 이번 공연에는 그만한 적임자가 없다.

5월 공연은 연말 기획과 비정기적인 앵콜 무대로 이어지지만, 제작진에겐 아쉬움이 많다. 어렵게 만든 공연을 1년에 몇 차례 밖에 무대에 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재능기부’에 더해 사비까지 털어가며 공연을 만들지만 제작비는 턱없이 모자란다. 바자회를 열어 협찬받은 의상이나 구두도 팔고, 콘서트를 기획해 충당해 보기도 하지만 찾아가는 공연이나 지방순회 무대는 아직 꿈이다. 뜻있는 단체나 기업의 지원이 절실하다. 그래도 공연 때마다 보조석을 깔 정도로 반응이 뜨겁고, 몇 번을 다시보는 어린 관객들이나 수십년 만에 연극을 봤다는 노년의 팬들을 만날 때면 뿌듯하다. “관객들에 앞서 우리가 먼저 행복해지는 공연이자 재능기부”라는 것이 이들의 말이다. (02)332-5038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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