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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김태호 "멍 때리며 풍경을 느껴보세요"
현대미술계를 풍미하는 작품 중에는 꽃그림이며 풍경화도 있지만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회화도 많다. 작가 김태호의 작업은 후자에 속한다. 그는 화폭에 아크릴물감을 수십여번 씩 겹쳐올리며 우리 주위에서 쉽게 만나는 산과 둔덕을 그렸다. 그런데 결과물은 심심한 단색조 화폭이다. ‘무슨 풍경인데 이렇게 아무 것도 없는 걸까?’ 관람객의 입에선 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작가의 설명을 듣고, 작품을 다시 보니 알 듯도 하다. 여러 빛깔의 물감을 캔버스에 무수히 바르고, 또 바르면서 대상을 그리다보면 이처럼 무덤덤하고 투명에 가까운 그림이 나올 수 있음을 말이다. 김태호의 단색조 회화는 보는 사람의 위치와 주변사물, 조명에 따라 색깔이 미묘하게 변해 감상의 묘미 또한 각별하다. 그의 작품전 현장을 찾아가봤다.

오는 6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관장 박강자) 초대로 ‘Scape Drawing’전을 여는 김태호(59·서울여대 교수) 작가의 전시장을 찾으면 잠시 착각을 하게 된다. 너른 미술관 바닥에 물이 찰랑찰랑 고인 듯해 발을 살짝 담가 본다. 그런데 웬걸, 까만 유리다. 김 교수는 미술관 3층 바닥에 검은 유리를 깔고, 군데군데 나무데크(deck)를 설치했다. 벽에 걸린 그림, 관객의 몸이 비춰지며 유리 바닥은 연못같은 착시효과를 준다.



작가는 미술관 전관(지하 1층~3층)에 크고 작은 단색조 회화를 무수히 내걸었다. 어떤 형태도 그려져 있지 않지만 “나무, 강. 바람 등 풍경을 얇은 물감으로 그린 것”이라고 한다. 이번 작업은 북에 고향을 두고온 실향민들이 한뼘이라도 더 고향 가까이 가고 싶어 파주 법흥리에 조성한 묘역(경모공원)이 단초가 됐다. 장인의 묘소가 있어 그 묘역에 가봤다는 김태호는 "수많은 실향민들이 고향을 보겠다고 모였는데, 정작 보이는 건 묘역 뒤 푸른 하늘 뿐이었다. 실향민들의 수많은 염원이 겹쳐지면 하늘 빛이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참 묘했다. 그래서 풍경들을 겹쳐그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림은 온갖 풍경과 생각을 품었으나 마침내 ‘무(無)’가 됐다. 작가의 성찰과 관조가 이렇듯 아무 것도 없는, 그러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무심한 작업이 된 것이다. 작가는 관람객들이 이 ‘없음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세상사 복잡한 시름을 잠시 내려놓고 휴식을 취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무 것도 안 그려진 것이 어쩌면 가장 많은 것을 담은 것일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금호미술관측도 1층 전시장에는 1930~1960년대 빈티지 가구들을 비치하고, 김태호의 작품과 관련 자료를 설치했다. 고풍스런 의자에 앉아 무덤덤한 그림도 감상하고, 여러 미술자료도 들춰볼 수 있도록 한 것. "전시 부제를 ‘멍 때림’으로 하려다가 참았다"는 작가는 학고재갤러리(대표 우찬규) 본관에도 드로잉및 회화 20여점을 내걸었다. 학고재갤러리에서의 김태호 전시는 6월 10일까지 열린다. 02)720-5114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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