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와 경쟁하겠다.” 수차례 들었지만 내심 반신반의했다. “일단 타본 뒤에 평가해달라”는 기아자동차 측의 설명 역시 인사치레라 여겼다. K9을 시승하기 전 지녔던 솔직한 속내다.
직접 체험한 K9은 ‘상상 이상’의 능력을 보여줬다. 국산차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준 모델이기도 하다. 수입차 프리미엄 브랜드와 경쟁하겠다는 기아차의 포부가 그저 허황된 말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완벽한 모델은 없다. K9 역시 주요 수입차를 모방한 듯한 편의사양이나 상대적으로 부족한 가속력 등에선 2%부족한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메르세데스 벤츠, BMW 등과 비교해도 결코 부끄럽지 않은 모델이다. ‘계급장 떼고’ 붙어봐도 충분히 긴장감 넘치는 경기를 펼칠 만하다.
최근 경기도 양양 일원에서 K9 최고급 사양인 3.8 GDi 프레지던트를 시승했다. 내외관 디자인은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강조했다. 특히 스티어링 휠에 달린 햅틱 리모콘이 눈길을 끌었다. 원형으로 생긴 스위치를 돌리면 12.3인치 클러스터를 다양하게 조작할 수 있다. 세계 최초로 K9에 적용됐다.
인테리어 곳곳에선 주요 브랜드의 흔적(?)이 느껴졌다. 운전석 시트 조절 방식은 벤츠 모델처럼 도어에 장착됐고, 전자식 변속레버에선 BMW가 생각났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개인적으론 프리미엄 브랜드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실내 구성이 흥미롭고 편리했다. 물론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겠다.
가장 놀란 점은 바로 성능이다. 가속페달을 밟자 꾸준히 속도가 올라가며 어느새 150㎞/h를 넘겼다. 통상 이 정도의 속도에 이르면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곤 하지만, K9은 확실히 고속 주행의 안정감이 탁월했다. 이날 최고 속도로 190㎞/h까지 기록했지만, 체감하는 속도는 이보다 훨씬 느려보였다. 소음을 억제하고 안정감을 강화한 덕분이다.
차선을 이탈할 때면 해당 방향 시트에서 진동이 느껴지는 것도 무척 편리했다. 어느 방향의 차선을 이탈했는지 즉각 느낄 수 있으니 안전운전에도 큰 도움이 될 듯 싶다. 헤드업디스플레이는 ‘그림’까지 표현할 줄 아는 기술이 눈길을 끌었다. 기존 헤드업디스플레이가 단순히 숫자나 방향키 등을 표시했다면, K9의 헤드업디스플레이는 톨게이트를 지나갈 때 톨게이트 모양의 그래픽이 화면에 나오는 식이다.
가속감은 상대적으로 BMW 7시리즈보다 부족해보였다. 속도는 꾸준하고 부드럽게 올라가지만 그 과정에서 가속 페달을 깊숙이 밟아도 반박자 느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람다 V6 3.8 GDi 엔진은 최고출력 334마력, 최대토크 40.3kgㆍm, 공인 연비 10.3km/ℓ를 구현했다. 출력이나 연비 등에선 BMW 7시리즈 못지 않은 성능을 갖췄지만, 토크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판매가격은 5290만~8640만원이다. 7시리즈 등과 비교할 때 가격 경쟁력도 충분하다. 관건은 프리미엄급 구매가 제품만 보고 사는 게 아니란 점이다. 브랜드 이미지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K9 출시를 계기로 기아차가 프리미엄 이미지를 얼마나 상승시킬 수 있는가에 승패가 달려 있다.
<김상수 기자@sang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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