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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난 연애가…완벽한 연애”
‘사랑의 기초’ 펴낸 소설가 정이현
알랭 드 보통과 2년여 기획
80년대 20대들의 사랑방식
30대 기혼남의 결혼이야기
다른 감성으로 ‘사랑’ 해석


“저 군인아저씨 팬이 많아요.” 

베스트셀러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의 은수의 이미지를 소설가 정이현에게서 찾게 되는 독자들에겐 의외다. 20, 30대 여성들이 주 팬층일 거란 짐작과 달리 진짜 팬은 숨어 있었다.

대한민국 군인아저씨들의 ‘정신적 요람’, 진중문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바로 정이현이었다. 실제로 군대에서 처음 정이현의 소설을 읽었다는 남성들이 많다. ‘바깥세상’으로 나갈 날이 멀지 않은 장병아저씨들에겐 더욱 그랬다. 연애상담을 구하는 e-메일을 숱하게 받으며, 정이현은 어느새 ‘연애고수’가 됐다.

그런 정이현이 폭탄선언을 했다. “이제 연애소설은 그만 쓰려고요.”

한국에서 유별난 사랑을 받고 있는 소설가 알랭 드 보통과 2년여 공동기획 끝에 이번에 출간한 ‘사랑의 기초’(톨 펴냄)가 ‘연애의 끝’이란 얘기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2002년),‘달콤한 나의 도시’(2006년)를 거쳐 ‘사랑의 기초’로 연애 3부작을 완성한 셈인데 어쩐지 아쉽다.

이번 소설 ‘사랑의 기초’는 2010년 4월 출판사의 엉뚱한 제안에서 시작됐다. ‘사랑’에 관해 둘이 같이 뭔가 써보면 어떻겠냐고.

정이현은 “그쪽에서 한다면 뭐 해보지” 그런 마음이었다. 알랭 드 보통 쪽에선 소설이라도 읽어보고 싶다고 했고, 정이현의 영문 번역본을 읽어본 뒤 흥미로워했다. 그 후 많은 아이디어가 오고갔다.

“가령 소설 형식이 아닌 런던과 서울의 병원, 학교 같은 르포 형식의 제안도 있었고 ‘안나카레리나’ ‘카라마조프가(家)의 형제들’처럼 고전의 몇몇 문장을 뽑아서 구성하는 것, ‘냉정과 열정’처럼 하나의 서사를 갖고 해보는 것 등 다양한 얘기들이 오갔어요. 그러다 공동작업보다는 공동 주제를 갖고 각각 소설을 써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서로 관심사인 사랑이란 키워드를 떠올리게 됐죠.”

여기서 역할이 나뉘었다. 정이현은 80년대 20대들의 사랑 방식을 그린 ‘연인들’이, 알랭 드 보통은 결혼한 한 남자의 이야기, ‘한 남자’가 탄생했다.

정이현은 20대 남녀들을 여럿 만나 요즘 연애에 대해 물었다. “저희 때와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더라고요. 주인공 준호가 84년생인데 그 나이 또래 남자들은 많이 달랐어요. 가령 남자 서른 살은 결혼에 대해 생각이 없더라고요.”

젊은이들의 사랑 방식이 궁금했다는 소설가 정이현은 “비록 사랑이 미숙하더라도 어쨌든 미래가 어떨지 걱정하지 말고 현재를 즐기라”고 20대들에게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80년대생의 연애방식만 바뀐 게 아니다. 정이현의 사랑도 바뀌었다.

정이현은 2, 3년 전만 해도 사랑은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이 순간에 딱 그런 것’ 그게 바로 사랑이라고. 지금은 그 자리에 말줄임표가 앉았다. “그 사람 어땠어?”라고 물을 때, “준호 씨 있었지…”라는 말줄임표다.

‘사랑의 기초’는 정이현의 ‘연인들’을 먼저 읽은 뒤, 알랭 드 보통의 ‘한 남자’ 이야기를 읽는 게 순서다. 민아와 준호 같은 평범한 연인들이 결혼하고 나면 알랭드 보통의 벤과 엘로이즈 같은 부부의 일상을 만나게 된다.

민아와 준호 모두 연애가 처음은 아니다. 세 번째쯤. 소개팅을 받은 뒤 우연히 서로 겹치는 게 많은 걸 발견하지만 둘은 미적지근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엉뚱한 데서 조우한다. 그러니 기적이다. 정이현은 둘의 심리를 예민하게 포착하며 한순간도 떨어질 수 없는 시기를 거쳐, 차츰 상대방의 결점이 보이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 폭발하는 순간, 그리고 밋밋한 상태와 헤어짐까지 긴장의 줄을 놓지 않고 지켜본다.

결국 민아와 준호는 헤어진다. 왜? 정이현의 소설은 ‘연애’에 관한 것이니까. 그의 표현대로 “완벽한 연애는 끝난 연애이므로.”

그런 측면에서 보면 알랭 드 보통의 벤의 이야기는 ‘결혼생활의 정석’격이다. 평범하고 불만스럽지만 영웅적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섹스에 적극적이지 않은 아내에 불만스러워 포르노에 빠지지만 그런 자신이 또 불만스런 벤이다. 바람도 피우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이내 부끄러워진다.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며 안락한 저녁을 꿈꾸지만 두 아이의 뒤치다꺼리에 진이 빠지는 하루하루다.

정이현은 소설짓기에서 인물들에게 자율성을 많이 주는 편이다. 그들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거다. 그래서 끊임없이 질문한다. “준호가 이런 상황이라면?” “민아는 왜 이해하지 못할까?”

정이현은 새 작품을 문예지 ‘창비’ 여름호부터 연재한다. 북한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부터 김정일이 사망한 2012년 18년간의 얘기다. 삼풍백화점 붕괴 때 17살이던 여고생이 30대 중반이 되기까지 그녀가 본 90년대 강남 얘기, 성장담이자 소비자본주의의 실태보고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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