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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칼럼 - 이형석> 할리우드영화 열혈팬 한국관객과 황당한‘보안검색’
이형석문화부 차장
할리우드 영화 개봉 앞두고
관객 휴대폰 수거·가방 검사
잠재적 저작권 절도범 간주
비상식적 검색 코미디 수준


최근 서울 삼성동의 한 극장에선 당시 개봉을 사흘 앞둔 할리우드 대작 영화의 관객 초청 시사회가 열렸다. 이 영화는 개봉 이후 엄청난 속도로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상영 전 ‘묘한 풍경’이 연출됐다. 상영관 입구에는 검색대가 설치됐고, 주위에 보안요원들이 입장객들의 휴대폰을 모두 수거하는 한편, 일일이 가방과 소지품 검사까지 했다. 보안요원들은 관객들의 가방을 열어보는 것은 물론, 손을 넣어 내용물까지 확인했다. 카메라 소지 여부를 확인하려는 목적이었다. 이른바 ‘보안검색’으로, 공항 입ㆍ출국장 수준을 넘었다.

경찰도 영장 없이는 할 수 없는 가방 및 소지품 검사를 민간회사에서 고용한 사설 보안업체 요원들에 의해 서슴없이 이뤄지는 풍경은 불편한 수준을 넘어 섬뜩했다. 물론 영화사에선 보안검색 실시 사실을 사전에 고지했다고 하지만, 입장객 입장에서 보면 영화사가 ‘자선’을 하자고 무료 시사회를 연 것이 아니라 엄연히 영화 홍보를 목적으로 한 행사에 초청받은 셈인데, 미리 볼 수 있는 공짜표 한 장 얻었다고 ‘수색’ 수준의 보안검색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보안검색은 수준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미국 영화사의 한국 지사나 직배사에서 전 세계 동시 개봉작을 대상으로 언론 시사나 일반인 초청 시사회를 열 경우에 종종 이루어진다.

영화사에선 “미국 본사의 지시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만 거부할 수는 없다”고 해명한다. 불법 파일이 흥행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만큼 영화사의 우려가 이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공항 출입 이상의 보안검색은 비상식적이거나 코미디에 가까운 발상이다. ‘검색’을 당하는 관객들을 ‘잠재적인 저작권 절도범’으로 모는 행위로 인권 침해의 소지도 많다.

한국 영화 시사회에선 이러한 보안검색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전무하다. 왜 유독 미국 영화 상영에만 강도 높은 보안검색이 요구되는 걸까. 한국은 중국과 더불어 지난 몇 년간 미국 영화계의 ‘불법 다운로드’의 폐해가 만연한 국가로 종종 지목돼 왔으며, 이러한 상황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일 수 있다. 또 실제 상영관에서의 불법 촬영을 단속한다기보다는 ‘경고’나 ‘엄포용’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최근 한국과 중국은 작품에 따라 미국에 이어 두세 번째의 매출을 기록할 만큼 미국 영화의 배를 불려주는 시장으로 성장했다. 국내의 경우 미국 영화 직배사는 작품별 전체 매출 중에서 한국 영화보다 더 많은 비율(부율)의 흥행수익을 가져간다. 그래서 세계에서 처음 작품을 공개하는 ‘월드 프리미어’가 많아졌다고는 하나, 할리우드 영화의 고급 소비자로서 한국 관객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미국의 통신업체 AT&T와 펜실베이니아대 공동연구로 집필된 논문 ‘영화산업과 배급과정에서의 취약한 보안에 대한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할리우드 영화의 불법 파일을 조사한 결과 놀랍게도 70% 이상이 영화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나 영화제 심사위원, 기자 등 미국 영화 관계자들이 최초 출처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한국 영화계와 관객들에게 더 높은 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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