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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탁발수사 오도릭이 12년간 동방기행에서 본 것은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이븐 바투타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과 함께 세계 4대 여행서로 꼽히는 ‘오도릭의 동방기행’이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의 역주로 국내 첫 출간됐다.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이를 현대어의 실감과 아름다움을 담아 번역하는 것으로 정평이 난 정 소장은 이미 펴낸 ‘이븐 바투타 여행기’와 ‘왕오천축국전’의 역주서와 함께 중세 동서 문명교류사를 이해하는 3대 여행서를 완간하게 됐다.

오도릭(1265?~1331)은 14세기 이탈리아의 독실한 프란체스코회 소속 탁발수도승으로, 당시 서양의 동방전도의 시기에 ‘영혼 구제’란 사명을 안고 12년간 동방세계를 일주했다. ‘동방기행’은 그가 병상에서 구술한 내용을 동료 수사가 라틴어로 기록한 것으로, 오도릭 사후 2년 후에 발간됐으나 라틴어 원본은 남아 있지 않다.

정 소장은 이 책의 번역을 마음에 품고 있었으나 저본으로 삼을 만한 책을 구하지 못해 미루다 최근 헨리 욜의 영역본과 라틴어 사본, 이탈리아어 역본, 그리고 중국어 역본을 얻은 뒤 지난해 5월 작업에 들어가 넉 달 만에 마쳤다.

이번에 정 교수가 펴낸 ‘오도릭의 동방기행’(문학동네)은 크게 역주자의 해설과 여행기 본문으로 나뉘어 있다. 해설에서는 오도릭의 동방행을 촉발한 시대적 배경, 오도릭의 생애, 동방기행이 다른 여행서와 다른 점, 여행노정 등을 풀어놨다. 특히 209개에 이르는 풍부한 주석은 이 책의 가치를 한층 높여준다. 동시대 여행서인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이븐 바투타 여행기’, 이수광의 ‘지봉유설’, 최한기의 ‘지구전요’ 등 우리 고전까지 망라한 비교는 높은 식견 없이 불가능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중세 동서 문명교류를 이해하는 길잡이서라 부를 만하다.

‘오도릭의 동방기행’은 무엇보다 사실성 면에서 다른 여행서를 넘어선다. 일반적인 인문지리나 유적 유물은 물론 현지인들의 이색적인 풍습이나 이전 대여행가들도 놓쳤거나 감히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기괴한 폐습까지도 실감나게 전하고 있다. 인도 서북부의 항구도시 타나의 벌거숭이 여인들과 그곳의 조장 풍습, 쇠똥을 몸에 바르고 오줌으로 얼굴을 씻는 것을 성결로 여기는 인도 서남해안의 항구도시 폴룸붐의 소 경배, 아버지의 시신을 토막내 벗들과 친척들을 초청해 연회를 열고 말끔히 먹어치우는 일 등 모두 24가지의 풍습과 5가지 폐습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정 소장은 이와 관련, 해설에서 “폐습도 결국은 특정 시대 특정 인간의 고유 문화현상일진대 아무리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라고 해도 문화인류학의 한 범주에 속하는 문화유산임에는 틀림이 없다. 따라서 보존가치는 없다손 치더라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오도릭이 기술한 몇 가지 폐습 가운데 ‘우상숭배자’들이 행하는 끔찍한 폐습 같은 것은 종교적 편견에서 비롯된 과장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종교적 사명을 띤 행로인 만큼 수사들이 우상숭배에 어떻게 맞섰는지 보여주는 행적들은 매우 세세하다.

오도릭은 여행서의 문학적 특징이랄 기담이나 기적 등도 간간이 넣어 흥미를 배가시킨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서방의 것과 낯선 동방의 것을 비교ㆍ대조하는 방식도 오도릭의 탁월한 점이라 할 만하다. 가령 페르시아 황제가 사는 타우리스 시에 관해서는 “이 도시 하나에서만 거둬가는 황제의 세입이 프랑스 국왕이 그의 전 영토에서 거둬들이는 세입보다 더 많다”라고 이 도시의 부를 설명하며, 오르메스의 쥐는 이탈리아의 개만 한 크기라고 비교하는 식이다.

오도릭의 동방기행은 이미 30년 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으로 동방에 대한 호기심과 갈증이 얼마큼 해소된 뒤 나온 터라 식인 풍습 등도 당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 맨발에 탁발로 서아시아에서 동남아시아, 인도, 중국, ‘세계의 지붕’ 티베트를 거쳐 장장 12년간의 고행을 마친 오도릭은 1330년 고향 프리울리에 돌아와 동방재행을 꿈꾸지만 이듬해 숨을 거둔다.

정 소장은 “세계여행기는 인류의 공동문화유산”이라며 “세계여행기는 문명의근본 속성에서 비롯되는 이질적인 요소를 드러내게 마련이어서 이를 통해 문명교류학의 당위성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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