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걸려 완성한 기술력” 3년2개월만에 직접 발표회 참석
질적성장 통해 美·유럽 공략 박차
행사 시작은 오후 6시. 하지만 정몽구(75)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1시간 일찍 도착했다. 서울 하얏트호텔 내 신차 발표회장을 둘러본 그는 ‘고맙다’는 인사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다리가 좀 아프긴 하다”면서도 40분 가까이 행사장 입구에서 손님을 맞았다.
무대에 올라가서도 직접 차를 소개했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게는 K9 운전석에 앉아 볼 것을 권했다.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에겐 보닛을 열어 엔진룸 내부를 짚어가며 설명했다. 신기술이 적용된 LED 헤드램프를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재계 서열 2위, 글로벌 자동차업계 5위의 대기업 오너 정 회장. 그에게 과연 K9은 어떤 차일까. 평소 “차가 더 부각돼야 한다”며 신차 발표회 참석을 자제했던 그다. 정 회장이 현대ㆍ기아차 신차 발표회에 참석한 것은 2009년 에쿠스 이후 3년2개월 만에 처음이다.
다소 상기된 표정의 정 회장에게 소감을 묻자 “K9을 여러 번 타봤다. (기아차가) 이 정도 기술력을 갖추게 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는 답이 돌아왔다. 쟁쟁한 수입차들이 즐비하고, 결국 고객들이 평가를 하겠지만,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사실 K9은 ‘글로벌 명차와 경쟁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차를 만들어 보라’는 정 회장의 열정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불과 몇년 전까지 ‘바퀴 달린 냉장고’라는 혹평을 들었다. 하지만 정 회장이 ‘품질경영’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연평균 10% 성장을 거듭해 마침내 2010년 글로벌 5위에 당당히 올라섰다.
정 회장은 이제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장에 역점을 두고 있다. 대형차와 프리미엄차로 글로벌 명차들과 승부를 내겠다는 것. 이를 위해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의 본고장인 유럽과 미국 공략을 더 강화하고 있다. 현대ㆍ기아차의 공세에 놀란 유럽 자동차업체들은 한ㆍ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재개정 등을 논의하자며 지난주 대책회의까지 열었다. 과거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다.
2003년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K9의 전신 오피러스 신차 발표회장. 정 회장은 당시 “전략형 모델인 오피러스로 수출에 주력하겠다”고 자신했다. 꼬박 9년이 지난 K9 발표회장. 정 회장은 이날 “좀 더 두고 보자”는 단서를 달았지만 K9으로 사실상 글로벌 명차와의 경쟁을 선포했다.
<김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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