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나면 권력형 비리·성폭력·자살…2012 대한민국의 자화상
항상 “부족하다”생각 여론경청출신관계없이 능력따라 중용
겸손·인재중시 지금도 유효
MB정부는 출발부터 민심이반…고소영·회전문인사 풍자 대상
600년전 세종 메시지 되새겨야…한경연 KERI포럼서 제기
시끄럽다. 정말 시끄럽다. 탐욕에 물들어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눈과 마음은 이제 지쳤다. 연일 터지는 대통령 측근의 비리, 과년한 딸 제대로 밖에 나돌게 하기 두려운 성폭력 세상, 여전히 오명을 씻지 못하는 자살 천국, 여기에다 가족간 진흙탕 싸움까지….
사람들은 말한다.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임기 말 레임덕 시기로 치부하기엔 세상의 모든 ‘탐욕’과 그에 따라 쏟아지는 악취가 너무 진동한다.
이유야 헤아린다면 100가지, 1000가지도 넘겠지만 근본적인 것은 ‘실종된 리더십’ 탓이다. 세상을 지탱하는 주축인 사회지도층이 갈 길을 잃고, 지나친 욕심으로만 치달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참 의미 있는 발언이 나왔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경제학과)는 27일 한국경제연구원이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개최한 ‘제3회 KERI 포럼’에 참석, ‘세종은 어떻게 국가를 통치했는가: 소통의 정치와 리더십’이란 주제 강연을 통해 “세종대왕의 ‘명품 리더십’ 바탕에는 겸손과 인재등용, 두 가지가 깔려 있었으며 오늘날 이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의 리더십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600년 전 세종의 리더십을 조명하는 연구를 해왔고, 숱한 논문도 나왔다.
오늘날 우리에게 세종대왕은 단지 600년 전의 성군(聖君)으로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겸손과 인재중용의 철학을 실천했던 세종은 혼탁한 우리 시대의 잘못된 리더십에 경종을 울리는‘ 거울’이다.서울 광화문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세종. 편안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본인이 추구한, 세상을 편안케 하는‘ 명품 리더십’을 후손들이 잘 이어받지 못해 혹시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지는 않을까. 사진=박해묵 기자/mook@ |
하지만 이날 신 교수의 멘트가 마치 새로운 ‘세종학(學)’처럼 폐부를 찌르는 것은 어지러운 지금 세상의 탈출구 힌트를 얻은 듯한 반가움 때문이다.
세종은 겸손했다. 무소불위의 군주였지만 자신이 모자란다는 생각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항상 남의 의견을 경청했고, 훌륭한 인재는 출신성분과 상관없이 발탁했다. 마음을 백성에게 활짝 열어놓음으로써 스스로 독단에 빠지는 것을 경계했다.
세종의 이 같은 ‘명품 리더십’은 MB정부, 나아가 향후 차기 정부도 꼭 기억해야 할 덕목이다. 아니, 기억만 할 게 아니라 실천해야 할 국훈(國訓)이다.
MB정부는 겸손하지 못했다. 530만표라는 역대 최대 표 차이로 당선된 이후 축제에 빠져 처음부터 ‘거만의 허리띠’를 풀지 못했다. 인재도 널리 구하지 않았다. ‘고소영, 회전문 인사’라는 비아냥이 계속 돌았음에도 청와대는 외면했다. 그냥 “역대 최고로 깨끗한 정부”라고만 자화자찬을 일삼았다. 멘토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애지중지했던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친형 이상득 의원 등 MB 최측근의 비리 연루와 몰락은 그래서 예견된 일인지 모른다.
리더십 실종을 두고 MB정부만 비난할 일은 아니다. 차기 정부 역시 이대로라면 바람직한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누가 대권을 잡을지 모르겠지만, 총선 민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성공 뒤 보수’ 나눠먹기에 치중하는 새누리당, 다 잡은 고기를 놓쳤음에도 ‘그나마 고기라도 만져봤다’며 지도부 자리를 놓고 계파싸움을 벌이는 민주통합당 모두 세종의 명품 리더십을 논하기에는 싹수가 노래 보인다.
국민들은 건강한 사회로 가기 위해 세종만큼은 아닐지라도 그에 버금가는 신선한 ‘명품 리더십’을 원하고 있다. 물론 리더십은 정치권 몫만은 아니다. 재계의 건전한 리더십, 오피니언 리더의 책임 리더십, 하다못해 집안 가장의 소통 리더십 등 총체적인 ‘리더십 재무장’이 필요한 시대라고 입을 모은다.
600년 전 세종은 이런 메시지를 주고 싶어 할지 모른다. “리더십에 별것이 있나. 다만 오만과 편견, 탐욕의 독(毒)에서 벗어나는 게 리더십의 출발점이다”고.
<김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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