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는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하면서도 픽션을 가미해 중년 시청자의 감성을 자극하며 아날로그의 복고 바람도 일으키고 있다.
극중 송미진(이휘향)의 조카로 나오는 미현(김규리)은 안재욱을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배우 이정혜(남상미)의 영화 캐스팅 문제를 두고 “장미희 유지인 김자옥도 잘할 것 같은데, 꼭 이정혜가 해야 되느냐”고 말한다.
이 드라마는 이런 식이다. 극중 인물은 가공인물이지만 간혹 실제의 인물이 대사로 등장하기 때문에 리얼리티가 높아진다.
장철환(전광렬) 실장과 김재욱(김병기) 부장도 특정 청와대 비서실장과 중앙정보부장을 지칭하는 건 아니지만 몇몇 인물의 특성을 합쳐놓았다는 느낌을 준다. 신군부의 실력자로 부상하는 정장군을 두고도 ‘뒤에는 한빛회가 있다’고 말해 특정 인물을 연상하게 하는 효과가 생긴다.
게다가 통행금지, 장발단속, 궁정동 안가의 연예인 초청 파티, 대마초 파동, 언론 통폐합 등 당시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이 상황을 몸소 체험한 중장년 시청자에게는 몰입을 한결 쉽게 하고 있다.
1970~80년대는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기였지만 어두운 시절이 갖는 다이내믹함이 있었다. 신분상승 욕구나 변신의 의지는 더욱 강할 수밖에 없었다. 잘하면 한 번에 성공의 사다리를 탈 수 있고, 아차 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운명에 처하기도 한다. 이런 욕구를 풀어가는 강기태와 차수혁(이필모)이라는 두 남자의 대조적인 처신 형태를 통해 선과 악의 문제를 적절히 건드린다.
하지만 걸핏하면 사람을 잡아가고 고문을 밥먹듯이 행하던 어두웠던 현대사에서 인간의 리얼한 모습, 특히 돈과 권력에 의리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추악한 인간 군상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 모습을 가장 잘 연기하는 배우는 전광렬이다. 전광렬은 악역을 실감나게 연기해 확실한 존재감을 확보하며 긴장과 재미를 동시에 주고 있다. 핵심권력 내에서도 중정의 김재욱 부장과 팽팽히 대립하고 갈등하면서 긴장감을 높였던 전광렬은 최근 브로커로 변신해 돈이 되는 일은 뭐든지 하는 해결사가 됐다.
하지만 대중문화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제법 많이 다룬 초기의 모습은 중반 인질사건부터는 정치 복수극으로 성격이 다소 바뀌었다. 80년대 초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강기태와 조태수(김뢰하)가 4년간의 밀항지인 일본에서 돌아왔지만 다시 삼청교육대에 갔다오는 등 정치이야기의 비중이 높아졌다. 이제는 정치적 사건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빛과 그림자’는 한국 현대 대중문화사를 훑었다는 의미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뻔한 복수극이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다. 대중문화예술세계의 이야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나와야 하며, 그 과정에서 정치세계는 보조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쇼단 종사자나 영화배우 영화감독, 기획사나 클럽을 꾸려가는 인물은 손담비 나르샤 손진영 남상미 이세창 등 많은 사람이 설정돼 있지만 이들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40회가 넘어서고 총 50회 분량에서 14회가 늘어나는 연장방송이 결정되면서 드라마가 조금씩 늘어지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기태는 계속 외곽에서 맴돌며 시련과 위기에 빠지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지금은 캐릭터의 힘이 생긴 상태이기 때문에 개연성 있는 스토리가 짜임새 있게 밀착해서 전개된다면 시청률 30%도 넘길 수 있는 드라마다. ‘빛나라기획사’의 이야기를 통한 기태의 통쾌한 복수는 언제쯤 나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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