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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영 부정의 정신은 사랑에서 나왔다”
고려대 현대시연구회 ‘김수영 사전’ 발간
시 176편 5220개 단어 분석
‘않다’  ‘없다’ ‘아니’ ‘말다’등
부정어 詩 98편서 250번 사용
‘사랑’ ‘좋다’어휘도 많이 등장
‘거대한 뿌리’기점 시어 변해.


“김수영 시인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김지하, 신경림을 말할 수 없다. 김수영은 1960년대를 불도저처럼 밀고 간 시인이다.” 10년간 연인원 82명이 참여한 ‘김수영 사전’(서정시학) 편찬을 이끈 최동호 고려대 교수(현대시연구회 회장)는 60년대 시인들에게 김수영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고 강조한다. 최 교수는 ‘김수영 사전’ 발간과 관련, 최근 서울 인사동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그동안 중단될 위기가 여러 번 있었다”면서, 무엇보다 판본 작업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2003년 시작된 사전 만들기 작업은 민음사가 펴낸 ‘김수영 전집’을 정본으로 176편의 시를 하나하나 풀어 5220개의 표제어를 추출, 용례와 뜻풀이를 붙이는 식으로 진행됐다.

김수영 시인의 생전에 발간된 시집은 ‘달나라의 장난’(춘조사, 1959)이 유일하다. 사후에 여러 선집과 전집, 김수영 본인과 가족이 남긴 육필원고 등을 일일이 대조해 표기와 행, 연, 띄어쓰기 등의 차이를 보이는 시편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표로 작성한 것이 50여 쪽에 이른다.

시인과 시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사전 편찬은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다. 최동호 고려대 교수는 ‘김수영 사전’을 통해 ‘저항의 시인’으로만 알려진 김수영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사진은 김수영 생전 서울대 강의 모습.

이번 사전을 통해 김수영 시인이 사용한 시어를 분석한 결과는 김수영 특유의 사유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5220개 표제어 가운데 시인이 가장 많이 사용한 시어는 부정어. ‘않다, 없다, 안, 없어, 아니, 말다, 못하다, 안 한다’ 등의 부정어가 98편의 시에서 무려 250번이 사용됐다. 그에 못지않게 긍정적 시어도 많이 등장한다. ‘사랑’이란 시어도 16편의 시에서 48번을 썼고, ‘좋다’는 시어는 32편에서 41번, ‘웃다’는 17편에서 33번을 사용했다. 즉 김수영은 ‘부정의 시인’으로 불리지만 그의 부정은 긍정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수영 시인이 ‘저항시인’‘참여시인’으로만 알려져 있는데, 사랑과 긍정에 도달하는 시적 인식의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새롭게 보아야 한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김수영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풀’이나 ‘사랑의 변주곡’ 등은 그가 보여준 부정의 정신이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사실확인이라는 것.

김수영 시어 가운데 한자어는 ‘시(詩)’가 24편 49번,‘적(敵)’이 7편 43번, ‘자유(自由)’가 11편 33번으로 높은 빈도를 보였다. 신체어로는 ‘얼굴’(28편 55번), ‘눈’(39편 50번) 순이었다.

김수영 시어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1964년 펴낸 시집 ‘거대한 뿌리’를 기점으로 한 시어의 변화다. 이전 시에선 ‘나’란 일인칭대명사가 집중적으로 쓰이지만 ‘거대한 뿌리’ 이후 ‘너’의 빈도수가 많아지며 동시에 자질구레한 일상어들이 다수 등장한다. 이는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타인으로의 시선의 변화를 보여준다.

최 교수는 “사전 작업은 한국 현대문학 연구를 보다 실증적 차원에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연구토대를 마련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감성적 비평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고려대 현대시연구회는 한국 현대사에서 괄목할 성과를 보여준 시인들의 시인사전을 펴오고 있다. 2003년 ‘정지용 사전’을 발간했으며, ‘백석시어사전’을 준비 중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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