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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역 최고령 ‘밸리브리’ 은퇴…화려한 영광 추억이 되다
도전자 없던 무적의 경주마
상금만 12억 역대랭킹 4위

고령에 강도높은 훈련 부담
경기 대신 예비기수와 훈련


‘황제마’ ‘슈퍼 경주마’ ‘괴력마’ 등 과거 다양한 수식어로 불리며 과천벌판을 호령했던 현역 최고령 ‘밸리브리’(10세ㆍ거세마)가 정든 경기장을 떠났다. 2800만원의 헐값에 국내에 들어와 피나는 조련 끝에 폭발적인 스피드와 뒷심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명마로 거듭났던 밸리브리였지만 세월을 거꾸로 가지는 못했다. 지난해부터 경기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젊은 말들과 몸싸움도 힘겨운 상황이 됐다.

동고동락했던 홍대유(48) 조교사는 “밸리브리는 고령임에도 운동에 장애가 되는 질환 한 번 없고 아직도 누구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는 승부근성이 살아 있다”며 “마음만 먹으면 출전은 가능하지만 어린 경주마와 함께 강도 높은 새벽훈련을 견뎌내야 하는 밸리브리가 안타까워 은퇴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당당했던 밸리브리= 밸리브리는 마지막으로 출전했던 지난 14일 서울경마공원 10경주(1800m)에서 끝까지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출전한 12마리의 경주마 중에서 세 번째로 무거운 부담 중량(55㎏)을 짊어지고도 9위로 당당하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경주의 박진감을 높이려고 경주마별로 차이를 두는 부담 중량은 실력이 좋은 말에게 더 높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령임에도 경주 마지막 날까지 젊은 말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준 것이다.

밸리브리는 전성기에 누구도 도전자가 없는 무적의 경주마였다. 2006년부터 2년 연속 연도 대표마에 이름을 올렸고, 2007년 제26회 그랑프리(GI)에서도 우승컵을 차지했다. 그랑프리는 국산마와 외산마를 통틀어 최고의 경주마를 가리는 메이저 대회다. 당시 밸리브리는 최고의 라이벌 ‘섭서디’와 대통령배 우승마 ‘명문가문’을 가볍게 제치고 한국 최강마 자리에 등극했다.

이 같은 활약 덕에 밸리브리가 지금껏 쌓은 상금은 역대 경주마 랭킹 4위인 12억3000만원이다. 통산 전적은 53전19승2위13회로 승률 35.8%, 복승률 60.4%였다. 꾸준한 성적이 받쳐주지 못하면 결코 이루기 어려울 대기록이었다.

2007년 그랑프리 우승 당시의 모습.

▶기나긴 기다림 뒤에 마지막 포효= 밸리브리의 현역 시절이 늘 화창한 봄날만 있던 것은 아니다. 현역 후반기는 외롭고 초라했다. 지난 2010년부터 밸리브리에게 최악의 시절이 찾아왔다. 2010년 총 7회 출전한 경주에서 모두 꼴찌에 가까운 성적을 내며 전성기의 명성은 급격히 퇴색했다. 당시 8세의 밸리브리가 한국 최고의 경주마라는 찬사를 받았던 과거의 영광을 되돌릴 길은 없었다.

하지만 명마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밸리브리는 지난해 3월 ‘주몽’ 등 정상급 외산마들이 출전한 1800m 핸디캡 경주에서 가장 무거운 부담 중량(56㎏)을 지고도,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최고령 경주마가 보여준 눈물겨운 승리에 팬들도 환호했다.

▶홍대유 조교사와 형제보다 끈끈한 각별한 인연= 홍대유 조교사에게 밸리브리는 단순한 경주마가 아니라 자식과도 같은 존재다.

조교사 전업을 앞두고 있던 홍 조교사는 미국에 연수갔다가 우연히 밸리브리를 발견하고, 당시 친분이 있던 김인호 마주에게 구매를 요청했다. 2800만원의 헐값에 국내로 들어온 밸리브리는 홍 조교사의 훈련으로 명마로 거듭났다.

홍 조교사는 밸리브리의 데뷔전에 기승해 첫 우승을 이끌어냈고, 기수 은퇴 후에는 조교사로 밸리브리와 인연을 이어갔다. 밸리브리는 2007년 그랑프리 우승을 비롯해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승승장구했고, 홍 조교사 역시 신참 조교사의 매운맛을 보여주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제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기분을 알 수 있다는 사이가 됐다. 

화려한 전성기는 되돌릴 수 없지만 늙은 경주마와 중년의 조교사의 가슴에는 함께 땀흘리며 쌓았던 영광의 추억이 남아 있다.

밸리브리는 비록 경주로를 떠났지만 영원히 경주마로 남는 행운을 얻었다. 밸리브리는 기수 엘리트 코스인 한국마사고등학교에 기증, 예비 기수들과 훈련하며 노후를 보내게 된다.

홍 조교사는 “밸리브리는 거세를 한 말이기에 2세마를 낳는 씨수말로 데뷔할 수도 없고 경주마의 본능이 워낙 강해서 승용마로 활용하기도 어렵다”며 “밸리브리는 앞으로도 예비 기수들을 태우고 경주로를 달릴 때가 가장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형준 기자/cerju@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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