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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제적 작가 매카시"물구나무 세워 훑는게 내 작업"
<이영란 기자의 아트 & 아트 >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문제적 작가는 늘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미국 작가 폴 매카시(PAUL McCARTHY, 67)는 그 엽기성과 잔혹성이 도를 넘는다.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다. 세계의 정치지도자 부시 전(前) 미국대통령을 사정없이 뭉개버리질 않나, 동화 속 해맑은 주인공인 피노키오와 하이디도 엉뚱하게 패러디한다. 그 자신 하의를 벗어던지고 성행위를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왜 이토록 불편한 작품을 하는 걸까? 전후(戰後) 미국사회의 물질적 풍요의 이면에 감춰진 퇴폐와 금기를 회화, 드로잉, 영상, 사진, 조각, 행위예술, 설치 등 미술의 장르를 가리지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낸 매카시의 작업은 이런 의문을 품게 한다.

지난 40여년간 논쟁의 중심에 선 작업을 발표해 온 폴 매카시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서울 소격동의 국제갤러리가 개관 30주년을 맞아 새로 건립한 프로젝트관(제3관)의 첫 전시로 연 ‘아홉 난장이들’전의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전시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들’을 패러디한 대형 실리콘조각 ‘아홉 난장이들’(9점)이 나왔다. 이는 매카시가 지난 2009년부터 발표해 온 ‘백설공주(White Snow)’ 중 일부로, 해외 전시에서 많은 관심과 논란을 한몸에 받았던 작품이다. 국제갤러리 3관 앞뜰에는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를 연상케 하는 5m 높이의 야외조각 ‘사과나무 소년, 사과나무 소녀’(2010년작)도 설치됐다.

그동안 가부장적 남성, 정치인, 왕을 다룬 작업과 서부영화, 잠수함 등을 패러디한 ‘쎈’ 작업에 집중했던 매카시는 어느 날 러브스토리를 다루고 싶어 백설공주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표현한 난장이는 귀엽고 너그러운 난장이가 아니다. 젊고 예쁜 백설공주를 향해 야릇한 시선을 던지는 난장이들은 얼굴은 마구 뭉개졌는데도, 성기와 고환은 비대하게 확장돼 그 파편이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다. 디즈니 만화처럼 멍청이(Dopey), 박사(Doc), 졸림이(Sleepy), 재채기(Sneezy)로 명명됐지만 음험하기 짝이 없다.


작가는 “백설공주는 서구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모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나는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친근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무엇인지 되묻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인간인 우리 자신을 물구나무 세워, 한번 필터링하고 싶어 이렇듯 불편한 작업을 한다고 덧붙였다. 동화 속에 내포된 여러 겹의 어두운 심리적 요소를 끄집어내, 음흉하나 통렬한 서사로 빚어낸 그의 작품은 결국 그다운 백설공주 버전이 됐다.

매카시는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이번 작품에서 ‘아름다움을 본다’고 했다. 어떤 것이 있어야할 자리에 있을 때, 제대로 된 형태를 띠고 있을 때 아름답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뻔한 게 아닌, 새로운 걸 이야기하는 게 아름다움이라는 것.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강박적 통념, 대량소비사회, 폭력, 성적 욕망 등의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며 과격하고 도발적인 작업을 펼쳐 온 매카시는 베니스비엔날레에 네차례나 참가했으며 세계 유수의 미술관 전시를 통해 ‘미국의 가장 영향력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업은 신디 셔먼, 채프만 형제 등 많은 후배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가부장적 남성, 통치자를 다룬 작업에서 유난히 성행위 등 성적 코드가 많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 작가는 “떵떵거리며 세상을 호령하는 이들 또한 어릿광대나 다름없기에 그런 방식으로 조롱했다”며 “이 세상에 성스러운 것은 없으며 작금의 당면 이슈는 평등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자신 역시 ‘비판의 대상’이라는 매카시는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사이에서 번뇌하는 인간의 내면을 앞으로도 꾸준히 다루겠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5월 12일까지. 02-735-8449 

사진제공=국제갤러리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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