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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김화균> 이런 나라 물려줘서 정말 미안해
학교·학원서 매일 치이는데
행복한 아이가 어딨어요
아들의 시니컬한 대답
행복지수는 과연 높아질까


“너는 행복하니?” 오래간만에 고등학교 1학년 아들과 마주 앉을 기회가 있었다. 동료들과 돼지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병을 걸친 터. 밤 11시께 지친 모습으로 ‘배고파’를 외치며 들어서는 아이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웬 행복타령? 우리나라에서 행복한 아이가 어디 있어요. 학교에서 치이고, 학원에서 밟히는데….” 아이의 답은 명쾌했다. ‘행복하지 않다’였다.

서울시교육청이 내놓은 ‘서울학생행복지수’ 조사 결과에도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 그대로 나타난다. 초ㆍ중ㆍ고생들의 행복지수는 평균 5점 만점에 3.83점. 초등학생이 가장 높다. 세상을 알아가는 만큼, 상급학교로 올라가는 만큼 행복지수는 떨어진다.

아들에게 이 숫자를 내밀자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연 내 친구들이 그 정도 행복감을 느끼고 있을까요.”

몇 년 후, 아들은 대학에 진학할 것이다. 사회라는 전쟁터에서 치열한 생존투쟁을 벌일 게다. 나름 행복도 느끼고 더 큰 좌절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불안한 노후를 준비하게 될 아이. 과연 이 아이의 행복지수는 높아질 수 있을까.

4ㆍ11 총선이 코앞에 있다. 정치권은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 의혹’ 사건으로 난장판이다. 연일 상호 폭로 비방전, 그리고 해명과 부인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만은 정책선거를 하자’는 약속은 깨진 지 오래다. 사찰 정국에 피로감을 토로하는 국민도 많다. 필자 역시 정책 대결이 실종된 선거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선거만은 이 같은 약속 파기를 관대히 받아들이고 싶다. 민간인 사찰이라는 사안의 중대성 때문이다.

민간인 사찰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다.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행복을 침해한 행위다. 정치권과 국가권력은 이 같은 행위를 철저히 찾아내고 응징해야 한다. 반드시 재발을 막아야 한다.

그런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폭로와 해명은 있지만 사과는 없다. 응징과 재발방지의 출발점은 진솔한 사과다. 책임을 질 사람은 책임을 지고, 석고대죄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폭탄 돌리기만 있을 뿐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그러다 보니 깃털이 “내가 몸통이오”라며 짝퉁 행세까지 하는 판이다. 정말 비겁하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바로 행복이 아닐까. 굳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정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이 역시 행복일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을 배려하고 키워주는 게 정치다.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 그 사람에게 우리는 투표한다. 표로써 권한과 의무를 동시에 부여하는 것이다. 사찰 정국에 임하는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정말 세금이 아깝고 투표장에 나서기가 싫다.

얼마 전 헤럴드경제 동료기자들이 책 한 권을 출간했다. 이른바 ‘2040세대’의 절망과 희망을 함께 담은 책이다. 제목은 ‘이런 세상 물려줘서 정말 미안해’. 대표 집필을 맡은 한 동료는 이 제목 달면서 10대 딸의 얼굴이 아른거렸다고 했다. 아빠와의 넋두리성 토론을 마치고 지쳐 잠든 아들. 그래도 잠든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짜증을 낼지도 모르는 아들. 그래서 이런 세상을 물려줄까 봐 더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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