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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경희대 경영학과 김성은 교수. 정부가 연필 한 자루 까지도
학생이 9명밖에 없는 작은 시골 초등학교의 환경이 얼마나 열악할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학생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찾아 나섰다. 서울에서 4시간 떨어진 산속의 마을이라서 좁고 굽이진 흙길을 한참 달려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국도로 한참을 가도 좁은 흙길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 포장된 길 양쪽에는 현대식 간판이 걸려있는 작은 상가들이 들어서 있었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곧 초등학교를 찾을 수 있었다. 운동장은 발자국 하나 없이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운동장 한편에서는 장화 신은 아저씨가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여유롭게 꽃밭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담한 단층짜리 학교건물에 들어섰으나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나무로 된 실내의 복도마루는 윤기나게 잘 닦여 있었고, 복도 중간쯤 설치된 싱크대 위의 주전자에서는 보리차가 끓고 있었다. 너무나 평화로운 정경이었다.

‘아무도 안계세요’를 두세번 외치고 나서야 한 여교사가 문을 열고 나왔다. 금요일이라서 9명의 학생들이 모두 한 교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단다. 교무실에는 스탠드 에어컨 등 각종 전자제품이 잘 구비되어 있었다. 양변기가 설치된 화장실도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다. 어느 대도시의 초등학교에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총명하고 학업에 열의를 갖고 있으나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직접 찾아 보고자 방문하였다는 말씀을 드렸다. “정부에서 연필 한 자루까지 주기 때문에 돈으로 도움을 주실 부분은 없습니다. 요즘은 각종 자선재단으로부터 체험학습 등을 지원해 주겠다는 메일이 무척 많이 옵니다.” 즉 도움의 손길은 이미 충분하고, 굳이 필요가 없어 신청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근처 산골에 상황이 열악한 학교는 없느냐는 질문에도 어디를 가나 다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학생들을 만났고, 눈에 들어 오는 2학년 남학생이 있었다. 자주 이유없이 화를 내며 운다고 한다. 이모와 살고 있는데, 이모가 일을 나가면 이모의 장애인 딸을 돌보고 있다고 한다. 아침도 못 먹고 더러운 옷을 입고 왔었는데, 최근 삼촌이 베트남 여자와 결혼을 한 후 나아졌다고 한다. 그 학생이 마음에 걸려서 다시 교실로 들어갔을 때 아이는 무언가에 화가 났는지 울고 있었다. 할머니와 살고 있는 매우 어두운 여학생에 대한 얘기도 들었다. 지적장애자인 삼촌이 자주 때린다고 하는데 그 이상의 이유가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란다. 아직도 한글을 깨우치지 못하고 있는 학생에 대한 얘기도 들었다.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다고 하여도 생활비로 쓰여질 뿐이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학생들이 필요한 것은 장학금이 아니었다. 가정환경을 바꿔주거나, 일상생활에서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한 것이다. 학생들이 전문상담가 또는 특수교육자의 지도를 더 받을 수 있도록 강사료를 지원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사범대학에서 4년을 공부한 3명의 교사가 9명을 가르치고 있다. 즉 교사 한 명 당 3명의 학생을 오후 6시까지 돌보고 있는 것이다. 이 보다 더 좋은 교육 환경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또한 집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선생님보다 더 적합한 전문가를 찾기는 헤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선이란 도움의 손길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행복해 지는 행위라 생각한다. 기뻐하는 학생을 찾고 싶었다. 지난 3년간 작은 재단의 장학생선정위원으로 일하면서 지방자치단체, 경찰, 실업고등학교, 현직교사, 공부방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학생들을 찾으려 백방으로 노력해 보았다. 그러나 다른 장학재단도 많으니 빨리 결정하라는 독촉을 받기도 하고, 매년 수백만원의 장학금을 받는 학생에 비해 턱 없이 작은 금액이라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자선은 이미 내가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서 있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에 눈을 돌리려고 한다. 공부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학교를 다니기 어려운 학생들을 찾아야겠다.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어서 환하게 웃는 얼굴을 그려본다. 언젠가는 지역사회에 꿈과 희망을 살릴 수 있는 등불로 성장하는 학생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국경을 넘어 도움의 손길을 내민 대한민국을 기억해 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설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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