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사우스 플로리다대학의 조셉 반델로는 간단한 실험을 하나 했다. 대상자를 A, B두 그룹으로 나눈 다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양측의 시각으로 설명한 한 쪽짜리 글을 읽게 했다. 그 뒤 A그룹에는 이스라엘이 커 보이는 지도를 보여주고, B그룹에는 이스라엘이 작아 보이는 지도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양측의 갈등에서 어느 쪽을 언더도그(Underdogㆍ약자)로 볼 수 있는지 물었다. 이스라엘이 커 보이는 지도를 본 A그룹은 70%가 팔레스타인을 언더도그로 판단했다. 작은 이스라엘 지도를 본 B그룹은 62.1%가 이스라엘을 언더도그로 인식했다. 같은 정보지만 상대적인 크기에 따라 지지 정도가 달라진 것이다.
두 사례는 언더도그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는 사실이나 옳고 그름에서 떠나있다는 점에서 위험스러워 보인다.
미국 보수단체 티파티 패이트리어츠의 전략가인 마이클 프렐이 쓴 ‘언더도그마’(지식갤러리)는 언더도그마의 특성과 작동방식, 폐해와 활용까지 인간의 부조리한(?) 측면을 총체적으로 다룬다.
언더도그마란 힘이 약한 사람이 힘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하고 고결하며, 힘이 강한 사람은 힘이 강하다는 이유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믿음이다. 힘이 약하다는 이유 때문에 무조건 약자 편에 서고 그 약자에게 선함과 고결함을 부여하는 것이다.
저자는 9ㆍ11 테러를 통해 언더도그마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세밀히 살핀다. 9ㆍ11테러 당시, 미디어들은 건물에서 떨어지고 있는 한 회사원의 모습을 비추며 미국이 희생자, 언더도그가 됐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이내 ‘미국이 진짜 테러리스트다’ 식 구호에 자리를 내준다. 회사원 이미지가 미디어에서 사라지고 테러리스트란 표현도 바뀌기 시작한다. 곧 미국과 테러리스트, 양측이 도덕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퍼진다.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은 미국 외교정책이 초래한 당연하고 이해할 만한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테러리스트에 대한 동정심도 생겨난다. 9ㆍ11 테러에서 언더도그마의 마지막 단계는 죄 없는 사람들이 탄 항공기를 죄 없는 사람들로 가득한 빌딩과 충돌시킴으로써 미국에 용감하게 저항했다는 테러리스트 행위를 숭고하게 포장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여기에 음모론이 등장하며, 미국 국민의 36%, 1억900만명이 9ㆍ11테러가 내부소행이라고 믿는 단계로 완성된다.
세계 금융위기, 중동 갈등, 환경운동, 반미주의, 새로운 반유대주의, 중국의 부상 문제뿐만 아니라 유명인의 불행에서 얻는 기쁨, 작은 도시에서 벌어지는 대형마트 반대운동, TV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 등도 언더도그마로 해석이 가능하다.
‘브리튼즈 갓 탤런트’의 수전 보일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TV앞에 앉는 심리에도 언더도그마의 심리가 있다. 행동패턴 전문가인 앤서니 라빈스에 따르면 인간은 스스로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을 하게 된다. 하나는 위험을 감수하며 스스로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상대를 끌어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중요하지 않은 누군가가 갑자기 중요해지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언더도그마는 두 얼굴의 사나이다.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이 된’ 언더도그를 응원하지만 성공한 유명인이 되면 곧바로 등을 돌리고 매 발톱을 드러낸다.
이 공격을 피하려면 겸손함과 자선활동을 드러내는 이야기를 만들고 퍼뜨려야 한다. 오프라 윈프리는 이 방면에 도사다. 정치인들의 약자, 보통사람 전략도 궤를 같이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약자에게 무조건적인 도덕적 우위를 제공할까. 저자는 이런 언더도그마의 속성은 아이의 성장과정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아이들이 10~15년, 많게는 35년까지 부모에게 의존하는 기간 때문에 누군가 자신 위에 군림한다고 느끼게 되며, 이런 피해의식이 힘없는 언더도그가 어떤 기분인지 알게 하기 때문에 무의식적 동조의식을 갖는다는 해석이다.
저자는 언더도그마의 역사를 권력투쟁의 역사로 해석한다. 평등해지려는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힘의 축이 쟁점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 시대다.
언더도그마/마이클 프렐 지음, 박수민 옮김/지식갤러리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