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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한 선임기자의 art & 아트> 경쾌한 기호의 유희…그것은 한편의 詩였다
영국 젊은 예술가의 스승 ‘마이클 크레이그-마틴’ 내한전
데미안 허스트·게리 흄 등
‘yBa’군단의 스승으로 유명

일상적 오브제의 이미지
추상적 단어들과 결합
현대인의 삶·내면 압축된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

갤러리현대서 내달 29일까지


부드러운 은발을 휘날리는 마이클 크레이그-마틴(Michael Craig-Martinㆍ71)은 수식어가 많은 작가다. ‘영국 개념미술의 선구자’ ‘젊은 영국 예술가들(Young British Artists, yBa)의 대부’ 등등. 그가 한국에 왔다. 서울 사간동의 갤러리현대(대표 도형태)에서 개인전 ‘단어·이미지·열망’을 열기 위해서다. 대문짝만 한 알파벳이 등장하는 신작 회화를 들고 내한한 그를 지난 15일 만나봤다.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은 칠순이라는 나이답지 않게 당당하고 열정적이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공개하는 그의 신작은 글자와 이미지가 조합을 이루며 더욱 강렬하고 역동적으로 변모했다.

이를테면 ‘TIME’이란 작품은 새파란 바탕에 알파벳 대문자 ‘T·I·M·E’을 화면 가득 그린 뒤, 검은 물이 담긴 양동이를 그려넣었다. 시간은 물처럼 흐른다는 뜻인가. 알쏭달쏭하다. 

크레이그-마틴의 작품에는 늘 안경·의자·전구·옷걸이·소화기 등 우리 주위의 낯익은 사물들이 등장해왔다. 작가는 “이미지의 세계에선 사물의 크기와 색을 마음대로 갖고 놀 수 있다. ‘열망’ ‘유토피아’ 같은 추상어를 그림으로 보여주긴 어렵지만 단어로 그려넣으니 가능해졌다”고 밝혔다. 글자와 이미지 간 함수관계를 묻자 “특별히 연관이 있는 것도, 아닌 것도 있다”며 “예술은 익숙한 걸 낯설게 보는 것”이라고 답했다.

지극히 친숙한 일상의 오브제와 추상적 단어가 결합된 그의 신작은 경쾌한 기호유희이자, 현대 정물화의 또 다른 버전이다. 거기엔 현대인의 삶과 내면이 압축돼 있다.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인 작가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예일대)까지 마쳤다. 그에게 물었다. 왜 예술가가 되려 했는가. 그러자 12살 때 일을 들려줬다.

“세잔, 모네를 보다가 피카소, 마티스의 화집을 봤다. 그건 대단한 놀라움이었다. 2년 후 회화수업을 받았는데 ‘예술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임을 알게 됐다. 멈추게 할 수 없는 것, 그래서 더 매혹됐다. 도전하고 싶었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1973년 선반 위에 물컵을 올려놓은 ‘오크 트리’라는 설치작품으로 영국 개념미술의 전환점을 알렸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주창한 것. 이후 런던 골드스미스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데미안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게리 흄 등 훗날 ‘yBa’로 유명해진 작가들을 가르쳤다.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의 신작‘ 유토피아’. 알파벳과 일상의 낯익은 기물을 결합시킨 작업에 대해 작가는 “이미지의 세계에선 사물의 크기와 색을 마음대로 갖고 놀 수 있다. 예술은 이렇듯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제공=갤러리현대]

그는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를 이끌어내는 수업을 통해 ‘런던발(發) 새로운 미술’의 태동을 부추겼다. 제자들에게 “너무 새로워지려 애쓰지 마라. 우리가 가진 건 이미 풍부하다. 잘 관찰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데미안 허스트는 훗날 “스승의 작품 ‘오크 트리’는 나의 정신을 개안시켰다”고 토로했다.

대학 강단에 서는 한편으로, 크레이그-마틴은 일상의 이미지를 낯설게 재배치하고 조합해 새로운 의미가 떠오르게 한 회화들을 쏟아냈다. 그의 작품은 개념적으로 새로우면서 시각적으로 상큼한 것이 공통점이다. 그는 “나는 예술을 하나의 은유이자 상징이라 느낀다. 산문이 아니라 시(詩)다. 그런데 현대의 재앙은 그 시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데 있다”고 했다.

그에게 “당신보다 데미안 허스트 등 제자들이 더 유명하고, 작품값도 더 비싸다”고 하자 “yBa들이 일군 건 굉장한 거다. 그들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다. 나는 운이 매우 좋은 사람”이라며 활짝 웃었다. 크레이그-마틴은 영국 현대미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영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전시에는 대형 회화 19점과 대형 조각 1점 등 20점이 출품됐다. 4월 29일까지 무료관람.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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