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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경·야·舞, ‘먼저 생각하는자-프로메테우스의 불’ 오는 28일 트라이아웃 공연
20여명 일반인들이 만드는 트라이아웃 공연 ‘프로메테우스의 불’…멍투성이가 되어도 좋아, 춤출 수 있다면…
LG아트센터·두댄스씨어터 신작
본 공연 전 선보이는 무대
대학원생·교사·타투이스트…
일주일에 네번 오후 7시 연습
발바닥엔 굳은살·뼈마디는 욱씬

“내 몸에 자유를 許한 기분
그 묘한 쾌감이 나를 춤추게 한다”


자고 일어나 보니 다리 곳곳에 시퍼렇고 검붉은 멍이 들어 있다. 몸을 풀어줬는데도 어디 한 군데 안 쑤시는 곳이 없다. 이부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는 데 무릎이 아프다. 어깨도 결리고 뼈마디 하나하나가 ‘주인님 살려주세요’ 하는 기분이다. ‘에고고~’ 앓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쯤이면 포기할 법도 한데 일주일에 네 번, 오후 7시가 되면 어김없이 연습실을 찾은 것도 한 달이 훌쩍 넘었다. 내 몸에 자유를 허락한 기분, 그 묘한 쾌감을 포기할 순 없기 때문이다.

회사원, 학생, 작사가, 교사, 주부까지… 평범한 일반인 20여명이 춤을 추기 위해 모였다. ‘먼저 생각하는 자-프로메테우스의 불’(LG아트센터ㆍ두댄스씨어터 공동 기획) 트라이아웃(try outㆍ본 공연에 앞서 미리 선보이는 무대) 공연을 앞두고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연습실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이들을 만나봤다.

꽃샘추위가 찾아왔지만 연습실은 금세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먼저 생각하는 자-프로메테우스의 불’(LG아트센터ㆍ두댄스씨어터 공동 기획) 트라이아웃(try outㆍ본 공연에 앞서 미리 선보이는 무대) 공연이 불과 열흘도 남지 않은 지난 19일, 일반인 무용수들이 LG아트센터 연습실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현대무용은 어렵다고? 일곱 남자의 ‘무용 도전기’=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몸 세포 하나하나가 다 살아 있는 느낌을 받고 있어요.”

두댄스씨어터(대표 정영두)의 신작 ‘먼저 생각하는 자-프로메테우스의 불’ 트라이아웃 공연에 참여 중인 20여명의 일반인 가운데 남자는 단 7명. 대학원생, 회사원, 교사, 전직 타투이스트 등 직업도 다양하다. ‘무용을 좋아해서’ ‘여자친구가 권해서’ 등등 이번 무대에 동참하게 된 계기도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이들 모두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춤을 추며 여러 사람과 함께 호흡하는 느낌이 신선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원에 재학 중인 백종관(31) 씨는 “춤을 추면서 ‘내 몸도 이렇게 유연할 수 있구나’ 싶다. 마치 ‘시ㆍ공간’이 확장된 것 같은 느낌”이라며 난생처음 ‘몸’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고 고난이도의 동작까지 소화하려 안간힘을 쓰다 보니 발목과 무릎은 보호밴드를 동여매야 버틸 수 있다. 발바닥에 박힌 굳은살을 볼 때마다 ‘고생을 사서 한다’ 싶지만 한 번 본 ‘춤맛’에 이미 빠져버렸다. 이건학(34ㆍ교사) 씨는 “무릎이 너무 아프지만 이번 무대가 끝나도 춤을 계속 추고 싶어요.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거든요”라고 참여 소감을 밝혔다.

여자친구의 권유로 이 공연에 동참하게 된 김동일(30) 씨는 “발에 물집이 잡히고 파스를 붙일 때마다 여자친구가 원망스러울 정도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소통하며 뭔가를 만들어가는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작품에는 ‘조니 아이 하들리 뉴 유(Johnny I Hardly Knew Youㆍ당신을 못 알아보겠어)’라는 아일랜드 민요가 흐르는 가운데 일곱 남자가 추는 군무가 포함돼 있다. 여자 무용수들이 ‘빙빙 돌아라’ 노래를 부르면 남자 무용수들이 각각 개성 넘치는 안무를 선보인다.

정영두 안무가는 “배경음악으로 쓰인 곡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군인들을 환호하는 노래로 불렸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의미의 곡이죠. 전쟁에 끌려간 남편이 처참한 모습으로 돌아오자 아내가 슬픔에 젖어 절규하듯 부른 노래였으니까요”라면서 “우리 삶에 많은 부분이 이중적인 면을 갖고 있는데 작품을 통해 그런 부분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20여명의 무용수가 한 줄로 서서 칼, 다이너마이트, 총 등을 손에서 손으로 전달하는 장면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것들이 세상을 파괴시키는 도구가 될 수도 있음을 상기시키는 장면인 것.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엔 다소 난해할 수 있는 현대무용. 무용수 입장에서는 살사나 탱고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법칙에 따라 출 수 있는 춤도 아니고, 관객들 역시 무용수들이 표현하는 몸의 언어를 추상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트라이아웃 무대에 함께하는 이들은 말한다.

“ ‘이렇게 춰야 한다. 이것이 정답’이라는 식의 교육을 받아왔잖아요. 그런데 현대무용을 통해 내 생각, 내 감정을 몸의 언어를 통해 창의적으로 표출할 수 있어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어요.”

안무가 정영두

▶정영두 안무가, 일반인들 이끌고 작품 해 보니… ‘순수한 열정’ 빛나= “얼씨구~ 옆 사람을 느끼시면서 음악이 끝날 때까지 놀아보세요.”

정 안무가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중간 중간 흥겨우면 함께 어깨를 들썩이고 잘하는 무용수에겐 “많이 좋아졌다”며 아낌없는 칭찬도 던진다. 그는 올해 선보일 신작 ‘먼저 생각하는 자-프로메테우스의 불’의 11월 공연을 앞두고 올 초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무용 워크숍을 진행했다.

여기에서 선발된 20여명의 일반인 무용수와 함께 지난달 8일부터 공연 연습을 시작했고, 오는 28일 LG아트센터에서 트라이아웃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춤을 전문적으로 접해본 적이 없는 일반인들을 이끌어 무대를 준비하는 일이 쉽지 않을 테지만 연습 현장의 분위기는 억지스럽지도, 심각하지도 않았다.

정 안무가는 “이런 무용 워크숍에 일반인들이 적극 참여해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참여하는 동안만큼은 ‘전문 무용수’라는 생각으로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관객들에게도 ‘이 장면은 이런 의미’라고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 않아요. 무용수들의 움직임, 장면 자체에서 무엇이든 느껴지는 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라며 속도가 중시되는 시대에 ‘한 편의 시’처럼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정 안무가는 또 춤 자체를 쉽게 정의내리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워했다. ‘무대 위 자유로운 표현’에 자칫 한계선을 긋게 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일반인들이 함께 모여 춤을 추는 것을 일컬어 ‘커뮤니티 댄스’라고 규정짓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일반인 무용수들의 움직임에서 기발한 발상이나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많아요. 고정관념 없이 순수한 열정으로 춤을 추기 때문이죠. 더 자유로울 수 있는 춤과 무대를 어떤 말로든 그 테두리에 가두려고 하는 것은 경계해야 되는 것 같습니다.”

<황유진기자@hyjsound> /hyjgogo@heraldcorp.com
[사진제공=LG 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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