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커갈수록 애정이 담긴 말보다 질책에 가까운 말들을 많이 한다. 그리하여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점점 줄어든다.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걸, 아이의 말과 몸짓을 통해 생각을 읽어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쉽지 않다. 날로 학교 폭력이 심각해지는 요즘,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은 아니더라도 말을 나누고 싶은 어른들에게 <사료를 드립니다>(푸른책들. 2012)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5편의 동화는 내 주변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심지어 어떤 부분은 마치 내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조폭 모녀>의 민지와 엄마가 나누는 대화가 그러했다. 학습지 선생님인 엄마는 항상 다른 아이들과 민지를 비교했고 민지가 원하는 것들에 대해 시험 점수를 걸고 결정을 내렸다. 무언가 요구하는 아이나 조카에게 포용보다는 들어줄 수 없는 분명한 이유를 대는 내 모습을 민지 엄마를 통해 본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몰래 카메라> 속 유나의 부모처럼 용돈에도 인색하다. 어른들고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참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풍족한 용돈으로 친구랑 군것질도 하고 좋아하는 남학생에게 근사한 초콜릿 바구니도 사주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유나가 요술 주머니를 꿈꾸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한 번쯤 그런 상상을 할 것이다. 그 마음을 알면서도 흔쾌히 용돈을 줄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건 무리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사람 찾아보기란 숙제를 통해 주변을 돌아보는 <이상한 숙제>와 강아지 입양 과정을 통해 애완견과의 우정을 담은 <사료를 드립니다>는 함께 사는 사회, 배려하는 세상에 이야기다. 우리네 일상과 가장 가깝게 느껴져 더 씁쓸했던 동화는 <건조 주의보>다. 공부 잘 하는 고등학생 누나 때문에 부모님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초등학생 건우는 불만이 가득하다.
누나의 기분에 따라 엄마가 건우에게 신경을 쓰거나 화를 내는 강도도 달라진다. 공부하느라 안구 건조증에 걸린 누나, 열심히 일하느라 피부 건조증에 걸린 아빠, 누나와 아빠에게 신경쓰느라 입이 마르는 구강 건조증에 걸린 엄마다. 가족들과 달리 건우는 어떤 건조 증상도 없어 마치 가족이 아닌 것만 같은 생각까지 든다. 그런데 친구 윤서가 마음이 건조하다는 말을 듣자 건우는 신이 난다.
‘누나는 안구 건조증, 아빠는 피부 건조증, 엄마는 구강 건조증, 그리고 나는 마음 건조증! 이제 나도 당당히 한 가족이 됐다. 건조 가족.’ p. 52
건우가 이렇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그러할 것이다. 공부와 대학이 전부가 된 사회에서 가족은 점점 흩어진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함께 모여 밥을 먹는 일도, 얼굴을 마주하고 눈을 맞출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게 인생의 전부일까.
이금이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그 안에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아이들의 마음은 가까이 있어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 책이다. 항상 매만지고 들여다봐야할 게, 바로 아이들의 마음이다. 나중으로 미뤘던 아이들과의 시간이 나중에 저절로 오지 않는다.
[북데일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