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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고 붉고 차가운…읽는 내내 불편했다
김사과 다섯번째 소설‘테러의 시’
희망없는 아웃사이더들의 삶

냉소적·위협적 시선으로 담아


문장 곳곳 욕설·괄호( )…

그녀만의 파괴적 문법 눈길


소설가 김사과(28)가 다섯 번째 소설을 냈다. 세상의 부정, 폭력에 날을 세워온 그가 이번 ‘테러의 시’(민음사)에서 그야말로 제대로 휘둘렀다. 선혈 낭자한 누아르 영화처럼 소설은 내내 검고 붉고 차갑다. 첫 장면 ‘에어로졸’은 묵시록적이다. 처참하고 무지막지한 세계로 진입하는 전주곡처럼 황량하다. 

노란 모래가 눈꽃처럼 흩날리며 삼켜버릴 듯 도시의 구석구석을 위협한다. 건물이 모래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고 전봇대가 맥없이 쓰러진다. 호수는 모래로 잠기고 아이는 모래에 묻혀간다.

그리고 여자가 아비에게 강간을 당하고 낯선 남자에게 팔려간다. 개처럼 키워지고 조선족 여성 제니는 그렇게 버려진다.  제니는 세상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눈을 떠 보니 좁은 방이다. 그곳에서 제니는 두 개의 침대를 갖게 된다. 각국에서 온 섹스클럽의 여자들은 신세한탄을 하며 울지만 제니는 아무것도 없으며 아무것도 아니어서 울지 않는다. 제니에게 현실과 비현실은 나뉘지 않는다.

제니는 자신의 핑크 방에서 남자들을 받아낸다. 그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자들이 묻고 제니는 “몰라요”를 반복한다. 그룹 섹스에 끌려가 만신창이가 되지만 제니에게 의식은 없다.

아내와 이혼한 공무원 남자가 제니를 대여형식으로 가정부로 데려온다. 남자와 세 아이가 있는 곳에서 제니는 일상의 맛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내 재준의 과외선생 리를 만나면서 제니는 또 다른 세계에 빠진다. 불법체류자인 리가 사는 곳은 페스카마 15호. 건달, 정신병자, 깡패, 도박중독자, 마약 중독자들이 그곳에 모여 산다. 젊은 예술가들도 그곳을 찾는다. 리는 매일밤 그곳 사람들과 마작을 하고 각성제를 흡입한다. 제니는 남자 집을 나와 페스카마 사람이 된다. 그리고 매일밤 꿈을 꾼다, 그것은 희망과 악몽이 혼재된 꿈이다. 

2005년 등단 이후 개성적인 문체로 문단의‘ 무서운 아이’로 통하는 소설가 김사과가 모래성 같은 도시, 서울의 폭력와 광기에 정면으로 맞섰다.

김사과 소설의 낯섦 은 소설적 문법의 파괴에 있다. 어느 부분은 시처럼, 희곡처럼 읽힌다. 욕설, 비문은 예사다. 심지어 주어의 자리에 괄호( )를 치기도 한다.

이어지지 않는 문장들은 그 자체로 완강하게 닫혀있으며 앞뒤 문장과의 연결에 매달리지 않는다. 각 문장은 ‘나는 나다’를 외친다.

소설의 배경이랄 시간과 공간조차 무의미하다. 제니에게 공간은 그저 문 뒤에 문이 있고, 문이 열리면 뒤에 문이 닫히는 문의 연속일 뿐이다. 그리고 공간과 공간 사이는 어둠으로 채워져 있다. 눈을 가린 채 어느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불이 없는 긴 복도를 지나면 다른 공간이 나타나는 식이다. 그곳이 섹스클럽이 됐든, 공무원의 집이든, 철거촌의 교회든 어느 곳도 구원이 되지 못한다.

작가는 제니에게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차갑고 냉혹하다. 금기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폭력의 현장을 날것 그대로 범죄현장의 수사관처럼 기록할 뿐이다. 비명조차 낼 줄 모르는, 동물보다 못한 깨져버린 인간성을 냉소적으로 그려내는 김사과 특유의 스타일이 이 소설에서 완성된 느낌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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