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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모진동은 ‘모진 여인’들이 모여살아서 붙인 지명
말(馬)은 예부터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동물이었다. 철도나 비행기, 자동차 등 지금처럼 기계화한 교통수단이 없던 시절에는 사람의 이동이나 짐을 옮기는 데 말처럼 유용한 수단이 없었다.

우리 삶의 곳곳에 아직도 말과 관련된 지명이 많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현재와 가장 가까운 조선시대는 말과 관련된 산업과 각종 제도, 말을 기르던 대규모 목장 등에서 유래한 지명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 600년의 도읍이던 서울은 당시에도 교통의 중심지로 역할을 했던 만큼 지방보다 유독 재미난 지명이 많다.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의 옛 지명은 말죽거리였다. 말죽거리 지명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1624년 ‘이괄의 난’(광해군을 몰아낼 때 공을 세웠던 이괄 장군이 처우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킨 사건) 때 인조 임금이 일행과 함께 남도지방으로 피난을 떠나던 길에 허기와 갈증에 지쳐 한 마을에 들렀다고 한다. 인조 임금은 피란이 급한 나머지 말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마을 주민이 쑤어준 죽으로 허기를 달래며 급히 먹었다고 한다. 여기서 유래해서 말죽거리가 됐다는 설이 있다.

또 하나는 이 일대가 서울 도성을 나와 충청ㆍ경상ㆍ전라 등 삼남으로 출발하는 지점의 위치였고, 서울 도성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말죽거리가 도성 입성에 앞선 마지막 주막이 있던 곳으로 휴게소와 같은 기능을 했다고 한다. 많은 여행자가 여장을 풀기도 하고, 먼 길을 걸어온 말에게 죽을 끓여 먹였다는 것이다.

말죽거리 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 말과 연관된 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

과거 파발은 기상이 나쁘면 봉수만으로는 상황 전달이 어려워 이를 보완하려는 수단이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뒤 탄생한 파발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파발참’이라고 불리는 역을 두었다. 한 역에서 이웃한 역까지 소식을 릴레이식으로 전달하는 방식의 제도였다.

1597년 한준겸의 건의로 제도화한 파발은 서울과 평안도를 연결하는 서발, 서울과 함경도를 잇는 북발, 서울과 동래를 연결하는 남발 등 3개의 파발이 주축이었다.

이 가운데 소식을 전하는 공무 출장자의 숙소인 원(院) 주변이나 파발로를 따라 촌락이 형성됐다. 이태원, 퇴계원, 장호원, 조치원, 사리원, 역삼동, 역촌동, 구파발 등의 지명도 여기서 나왔다.

파발은 연락수단에 따라 기발(騎撥)과 보발(步撥)로 나뉘었다. 기발은 말로 달리는 것으로 25리마다 역(驛)을 두고, 보발은 사람이 달려가서 연락 문서를 전달하는 것으로 30리마다 참(站)을 두었다.

서발 길목에 해당하는 은평에는 역참이 한 곳 있었는데, 지금의 구파발이다. 구파발은 한양에서 의주를 잇는 길의 한 참 거리인데, 한 참은 대략 25리 정도다. 우리가 흔히 상당한 시간 경과를 두고 ‘한참 지났다’고 하는데 이 ‘한참’이 바로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마장동은 과거에는 말을 기르던 목장이 있었다. 옛 지명은 살곶이로 그 주변인 현재의 성동구와 동대문구 주변은 말을 먹이기 좋은 풀밭이 많았다.

중랑구 면목동(面牧洞)과 인근 용두산(龍馬山) 역시 좋은 말(良馬)을 길렀던 데서 유래했다. 훗날 양마산(良馬山)이 용마산(龍馬山)으로 바뀌었다고 하고 용마산과 인접한 광장동은 너른 마당이란 뜻으로 말이 여물을 먹던 곳으로 알려졌다.

고양시 마두동은 말머리를 닮은 정발산 입구라서 붙은 지명. 또 모진동(毛陳洞)은 먹을 것이 없던 당시의 슬프고도 재미난 유래가 전해진다.

모진동은 인근인 마장동 목장 주변에서 말이 도망치다 수렁에 빠지면 인근 주민이 몰래 도축을 해서 먹는 것을 보고 나왔다고 한다. 방목된 말이 탈출해서 달리다가 실족한 곳은 현재의 건국대 정문 근처의 수렁이었고, 주로 이곳 여인이 수렁 위에 널빤지를 띄워놓고 말을 건져내 그 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이에 인근 주민이 이 동네의 여인을 보고 ‘모진 여인’이라 불렀고 이 모진 여인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모진동’이 됐다는 것이다.

심형준 기자/cerju@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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