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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영남, 돌고돌아 이제야 클래식으로
‘더 클래식 조영남 음악회’오는 23·24일 공연…대중가수·화가·작가·방송인서 ‘청년 성악가 조영남’ 다시 서다
자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최대치를 꿈꾸기 위해 스스로 ‘경계인’의 삶을 택했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대중 가수, 화가, 작가, 방송인. 다양한 영역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온 조영남(67)이다.
굳이 어떤 수식어를 골라 붙이지 않아도 국민 모두가 아는 이름 석자의 주인공이 됐다. 어떤 이는 그의 ‘자유로운 영혼’을 두고 시대를 앞서 태어났다고 말하지만 조영남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저 “‘무슨 재미있는 일 없을까’ 궁리하며 평생을 살아왔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가 또 한 번 재미있는 일에 도전장을 던졌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를 밟는 것. 대중가수로서는 의미가 남다른 무대다. 최근 서울 청담동 자택에서 그를 만나 오페라극장 공연을 앞둔 소감을 들어봤다.


▶나는 ‘생계형 음악가’ …내게 음악은 매달리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 “음악은 나한테 생계수단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해야만 하는 것’이었으니까…”
조영남은 그것이 본인의 약점이라고 했다. 누구는 음악에만 혼신의 힘을 쏟으며 매달린다고 하는데, 본인에게 음악은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해야만 하는 것’ 이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조영남은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지만 일찍이 돈을 벌기 위해 음악다방 ‘쎄씨봉’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1969년에는 스물다섯 나이에 번안 가요인 ‘딜라일라’로 가요계에 정식 데뷔, 인기를 얻기 시작해 대중 가수의 길을 걸어왔다. 그런 그가 이번엔 오페라 아리아 무대를 갖게 됐다. 그것도 대중 가수에게는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서.

“가수들에게 방송국 무대가 꿈일 순 없다. 카네기홀이나 링컨센터에서의 공연을 특별히 여기는 것처럼 오페라극장도 마찬가지다.” 조영남은 공연 기획사 측으로부터 오페라극장 공연이 확정됐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가수, 화가, 방송인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예술인으로서의 자유를 한껏 누리며 살아온 조영남. 그가 이번에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선다. 성악을 전공했지만 평생을 대중 가수로 살아온 그이기에, 언뜻 당연한 듯 여겨지면서도 남다른 의미가 존재하는 무대다.

▶나는 ‘제도’를 부정하는 사람? 그것은 싫어도 따라야 하는 숙명적인 것= “예술의전당 콘서트 홀에서 가졌던 공연에서는 ‘화개장터’ 같은 곡들도 자연스럽게 불렀는데 이번에는 가장 고급스러운 레퍼토리만 부르는 것으로 타협이 이루어진 것 같다.”

조영남은 오페라극장 공연에 대해 가장 클래식하고 고급스러운 곡들을 소화하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클래식으로 여기는 오페라 아리아도 당대에는 대중가요가 아니었던가. 그런 의미에서 무엇을 고급이라 칭하고 무엇을 고급스럽지 않다고 구분짓는 것이 과연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지 의견을 물었다.

그는 “맞다.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제도는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반항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안다. 클래식, 대중가요, 팝, 트로트… 각기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가 있지 않나. 통용되는 그 경계를 인정한다”고 대답했다. 이어 “내가 클래식과 대중가요의 경계에 있는 사람이라 이번 공연이 성사된 것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문호를 더 넓힌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무대”라고 대답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사람? 나는 통섭이론의 100% 지지자= “나는 음악도 하고 미술도 하고 책도 펴내는 등등 다양한 일을 한다. 좋은 집에서 살면서 ‘뭐 하나라도 열심히 하겠는가’ 싶어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 조영남은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하지만 억울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나 같아도 재수없어 할 것 같다”면서 오히려 시쳇말로 쿨한 반응을 보이며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조영남은 요즘 한창 ‘통섭이론’에 빠져있다면서 그의 다양한 활동을 통섭이론의 측면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통섭’이란 이화여대 석좌교수인 최재천 교수가 ‘Concillience’(Edward O. Wilson저)를 번역하면서 처음 사용해 알려진 용어로 요컨대 문화와 학문의 모든 분야가 회귀된다는 뜻. 다시 말해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개념을 전제로 다양한 분야가 상호 이해와 간섭을 통해 시너지를 일으킨다는 의미와 맥을 같이한다.

조영남은 “여러 분야(전체)를 다 알고 따질 수 있을 때 각 부분도 잘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분야에 기웃거리는 것을 편치 않게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음악을 잘하기 위한 활동의 하나라고 여긴다”며 그의 모든 활동은 각각의 창작활동에 긴밀한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가수는 무대위에서 감동을 실은 화살을 쏜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신이 만들었으니 어련하랴 생각한다.” 조영남은 의외로 여행보다는 재래시장에 들르고 마트에 가서 사람 사는 모습 구경하는 게 더 좋다고 말했다. 우리 삶과 밀접한 것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 또 앞으로 계획이나 꿈에 대해서는 “아이고 내일모레 일흔인데…”라며 이 정도로도 만족한다고 대답하며 손사래를 친다.
그는 본인에 대해 공상을 즐기지 않는 ‘현실주의자’라고 했다. 자신의 무대를 찾아주는 관객들에게도 무슨 더한 표현이 있겠냐며 소박한 메시지를 전했다. 조영남은 “감사하다는 말 뿐”이라며 “무료 공연도 싫으면 노 생큐(No, thank you) 하는 세상인데, 관객들이 직접 쌈짓돈을 털어 내 무대를 찾아준다는 것, 그 자체로 내게는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무대에서 내 감정을 한껏 실은 화살을 관객들의 심장을 향해 쏠 준비가 됐다. 하지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오롯이 ‘관객의 몫’ 아니겠는가.” 그는 공연을 펼친 후 그에 대한 반응은 언제나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면서 수십년 무대 위를 누빈 깨달음을 덧붙여 언급했다.

황유진 기자/ hyjgogo@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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