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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인훈 = 광장’ 통념을 깨다
고려대 오인영 교수 최인훈 다시보기 ‘바다의 편지’기획 출간

 문학·예술·역사 아우른
그의 독창적 사유궤적 조명

단행본 소설‘ 바다의 편지’
이례적 낭송CD도 담아


‘광장’의 소설가로만 인식된 소설가 최인훈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한국문화의 사유의 지평을 넓힌 사상가로서의 자리매김이다. 역사학자 오인영 고려대 교수는 소설 ‘광장’에 매몰된 최인훈의 시평들을 끌어내 그의 사유가 펼쳐낸 화려하고 거대한 테피스트리를 펼쳐 보인다. 문학과 예술, 역사를 아우르는 최인훈의 통 큰 사유와 이를 풀어내는 독창적인 글쓰기는 새로운 문학적 경험을 제공한다.

오 교수가 기획한 ‘바다의 편지’(삼인)는 ‘문명진화의 길’ ‘근대세계의 길’ ‘한국사회의 길’과 새로운 사고실험으로서의 문학 ‘바다의 편지’ 등 4부로 구성, 최인훈의 사유의 궤적을 꿰어낸다.

‘길에 관한 명상’ ‘문학과 이데올로기’ ‘예술이란 무엇인가’ ‘기술과 예술’ ‘인간의 Metabolism’ ‘문명과 종교’ 등 인류의 문명역사적 진화과정을 보여주는 특유의 통시적 접근과 통찰은 새롭고 선명하다. 가령 인간의 길을 몸의 길, 말의 길, 환상의 길로 제시하며 종교나 예술이 제시하는 환상의 길이 문제해결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문제해결 자체라는 것, 즉 마음속의 길을 현실의 길인 양 걸어가는 환상이라는 것, 다만 종교는 관념의 실체화를 현실이라 주장하고, 예술은 이 실체화를 비현실이라고 생각하는 데 차이가 있다는 얘기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오랜 깊고 넓은 탐색의 결과를 한 컷으로 보여준다.

최인훈의 글에는 지구상에 난 길을 웬만큼 꿴 자의 여유와 단단함, 환함이 있다. 흔들림이 없고 자유자재하다. 구체성을 담고 있으나 지식을 전달하는 정보로서의 글이 아닌 환상에 가까운 글쓰기를 통해 그는 문명, 예술, 역사 이해의 새로운 눈을 제공한다. 문학으로서의 글쓰기의 전형을 그 스스로 보여준 셈이다.

3부의 끝에 실린 ‘공명’에선 최인훈의 미학, 역사관을 읽어낼 수 있다. 삼국지의 제갈공명을 제재로 한 짧은 소설에서 화자는 제갈공명을 ‘소설미학의 육화로서의 인간’으로 부른다. 민족과 역사, 세계를 자기 개인의 운명으로 공감하는 정신적 완성의 경지에 도달한 인물이다. 난세를 사는 지식인의 전형으로 삼은 것이다. 

소설가 최인훈이 소설‘ 바다의 편지’를 직접 낭독해 CD에 담아 책에 함께 넣었다.
소설가가 활자화라는 수단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전달했다는 점이 의미롭다.

최인훈은 여기에서 “현실의 삶의 소용돌이를 자기 정신 속에서 진실하게 반영하면서도 그 소용돌이에서 직접 비켜선 자리나 개인을 허락하는 것. 그것이 문화다”고 말한다.

2003년도 문화비평지 ‘황해문화’에 선보인 소설 ‘바다의 소리’도 이 책에 묶이며 새로운 맥락으로 읽힌다.

‘바다의 편지’는 지난해 제1회 ‘박경리문학상’ 수상 자리에서 수상소감 대신 낭독될 정도로 작가 자신의 문학적 생애, 사유의 궤적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바닷속 심해에 누워 있는 백골이 의식이 꺼져가는 순간 마지막으로 술회하는 이야기는 비유적이고 묵시록적이다. 내가 관찰자가 돼 내 의식의 흐름을 따라 개체의 계통발생의 기억을 끌어내고 더듬으며 동물과 무생물, 우주로까지 확장시키는 목소리의 서술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어지럽고 충격적이다.

최인훈의 폭과 깊이를 보여주는 이 책의 탄생은 눈 밝은 역사학자 오인영 고려대 교수의 공이 크다. 각각의 시평이나 시론이 따로 떨어져 있을 때와 달리 전체 사유의 지평 속에서 오히려 더욱 빛나는 한 편으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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