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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학자 정약용의‘개고기 레시피’…
 서민들의 단백질 공급원
김안로도 유명한 마니아
개고기 접대로 벼슬 청탁도

한때 우금령 내렸던 조선시대
소염통 간장구이는 귀한 음식
사대부끼리 쉬쉬하며 즐겨


조선시대 음식문화를 떠올릴 때 이미지는 둘이다. 하나는 진진한 궁중요리, 다른 하나는 밥상이랄 것도 없는 헐벗고 거친 서민의 식탁이다. 반가의 식탁은 제대로 알려진 게 없다. 그나마 학문적 연구결과물이나 저작물 대신 TV드라마를 통해 알아간다. 조선의 음식문화는 그렇게 알려진 것과 달리 훨씬 다채롭고 복잡했다. 

저자가 들여다본 조선의 실세인 사대부의 밥상은 그들의 정치철학, 권력, 학문 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가령 절제를 강조한 이덕무의 식시오관(食時五觀)의 소박한 밥상을 비롯해 평생 궁벽한 시골에 살면서 콩을 즐겨 먹은 성호 이익, 음식을 단지 목숨 잇기의 수단 정도로만 여기며 채소밭을 가꾸었던 다산 정약용, “나는 평생 먹을 것만 탐한 사람”이라고 실토한 허균 등 음식에 대한 태도가 사대부 간에도 달랐다. 수많은 시를 쓴 서거정의 음식 취향은 불교와 유교 사이를 오락가락했고 윤원형, 김안로, 정후겸 등의 사대부들은 권력을 큰 밥상으로 과시했다.

사대부들의 밥상에는 양반들의 라이프스타일뿐만 아니라 조선의 정치철학과 계층문화가 다 들어있는 셈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품을 많이 들였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수다한 역사문헌은 물론 서거정의 ‘필원잡기’ 등 다양한 시문집까지 살펴 사대부들의 입맛을 살폈다. 시정과 흥취가 담긴 시에 등장하는 음식은 은유와 상징이기도 했다.

저자는 무엇보다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이행기를 주목한다. 새 조선의 변화는 밥상에 먼저 왔다. 육식금지가 풀린 것이다. 그 중심에 소가 있다. 특히 우심적, 즉 소 염통 간장구이는 가장 귀하게 꼽았다.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인정의 마음이 담긴 귀한 음식으로. 사대부들은 쇠고기 금령을 내렸는데도 저들끼리 쉬쉬하며 먹고 선물했다. 우심적은 조선사대부들의 지적 허영심을 자극하는 음식이기도 했다. 조선 사대부의 로망, 왕희지가 먹었던 음식이기 때문이다. 쇠고기 열풍이 불고 도살이 성행하면서 나라의 근간인 농업이 치명타를 입게 되자 마침내 우금령이 내려진다. 세종은 심지어 ‘소파라치’들에게 도살범의 재산을 보상금으로 주는 제도까지 뒀다.

우금령 속에서도 희대의 쇠고기 탐식가가 있었으니 중종의 재종 외숙 김계우다. 야담이긴 해도 그는 매달 초닷새 날이면 어김없이 소 한 마리를 잡아 커다란 은 쟁반에 쇠고기를 담아놓고 부인과 함께 하루 세 번 대작을 했다한다. 그런가하면 금령을 철석같이 지킨 이도 있다. 율곡 이이는 평생 쇠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다.
“왜 조선은 개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공간, 밥상까지 통제했을까? 그것은 사대부 중심
의 계급질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밥상을 차별함으로써 신분과 신분 사이에 장벽을 세
웠고, 계층 간에 서로 견제하고 반목하게 만들었으며, 서민에게는 지속적으로 열패감을
심어주었다.”(본문 중)

요즘 ‘삼겹살 데이’와 같은 쇠고기를 구워먹는 ‘난로회’라는 게 양반들 사이에 유행했다. 중국에서 들어온 난로회는 개성으로 가서 설야멱이 되고, 열구자탕으로 불렸던 신선로를 탄생시켰다. 일본의 스키야키도 승기악탕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변신, 양반가의 손님 접대 음식으로 상에 오른다.

개고기를 먹기 시작한 것도 조선 건국의 변화 중 하나. 불교의 나라 고려에선 먹을 수 없었던 것이 서민들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서민뿐만 아니라 양반들도 개고기맛에 빠져 있었다. 개장, 개장꼬지 누르미, 개장국, 누르미, 개장찜 등 다양한 요리법이 조선연회 관련 기록에 남아있다. 정약용은 개고기 애호가였다. 다산은 산개를 잡는 법, 개고기 삶는 법까지 남겼다. 진정한 개고기 마니아를 꼽자면 김안로를 들 만하다. 개고기 요리를 접대하고 벼슬자리를 부탁할 정도로 개고기 식탐은 유명했다.

왕실과 양반가의 인기 메뉴였던 두부의 내력도 흥미롭다. BC 2세기 중국 화이난에서 유래한 두부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건 고려 성종 때. 사찰의 공양음식이었다. 두부제조기술은 오래된 사찰의 전매특허였다. 조선의 두부는 중국 명나라 황제를 감동시킬 정도로 뛰어났다. 두부는 사대부들 사이에 선물로 인기가 높았으며 조선후기에는 두붓국인 연포탕을 즐기기 위한 연포회가 양반들 사이에 유행했다.

한국의 밥상에서 사라진 음식도 있다. 순채다. 왕의 수라상에 오를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은 순채는 일제강점기 때 사라진다.

저자가 조선의 음식문화의 발달을 제례문화에서 찾은 것은 새롭다. 다채로운 고기요리법, 불가의 음식인 두부가 제사상에 오르면서 유가의 두부로 거듭나는 과정 등 음식에 담긴 문화와 정치의 굵은 고구마 덩이 줄기를 끌어올린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역사의 갈피를 훑어내는 안목과 요즘 유행하는 말을 과감하게 차용한 맛깔스런 글도 읽는 재미를 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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