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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전 바꾸려면 통장부터 만드세요”
은행들 동전 여전한 찬밥대우

날짜까지 지정 시민들 헛걸음 일쑤

신불자 개인정보까지 캐물어

한국은행 캠페인과 엇박자

지난 연말 1년 동안 모은 동전 8만원가량을 교환하러 집 근처 SC제일은행을 찾은 주부 이남숙(54ㆍ서울 영등포구) 씨는 불쾌한 감정을 지을 수가 없다. 무겁게 동전꾸러미를 들고 갔지만 은행원이 동전 교환은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30분~11시30분 사이에만 교환이 가능하다며 동전 교환을 거부한 것. 이 씨는 결국 무거운 동전을 들고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 씨는 “뉴스에서는 동전 없다며 바꾸라고 난리치더니 이게 뭐냐”면서 “이렇게 눈치보이는데 누가 굳이 바꾸려고 하겠느냐”고 불쾌해했다.

한국은행이 매년 ‘범국민 동전 교환 캠페인’을 벌이는 등 동전 환수율을 높이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시중은행에서의 동전 교환은 여전히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들이 주로 찾은 시중은행들이 동전 교환을 꺼리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별로, 또 각 지역 지점별로 동전 교환 업무규정이 달라 시민들의 불편은 더 컸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10원짜리 동전 환수율은 4.6%로 작년 대비 2.4%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흔한 거절 행태는 동전 교환 가능 요일과 시간을 제한해놓는 식이다. 서울 구로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박모(34) 씨는 지난 11월, 수년간 모은 책상 앞 저금통을 가지고 인근 은행을 들렀다가 퇴짜를 맞았다. 은행에서 동전 교환은 매달 15일까지, 점심시간 이전에만 가능하다고 한 것. 박 씨는 “은행 갈 시간이 점심시간밖에 없어 여전히 동전을 못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업무효율성과 고객편의 향상을 위해 동전교환기를 설치했다는 일부 은행들도 고객들이 불편함을 느끼긴 마찬가지다. 대부분 교환 금액을 현금으로 지급하지 않고 자사 통장으로만 입금해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 통장이 없으면 동전 교환을 받을 수 없다. 이로 인해 동전을 교환하려면 어쩔 수 없이 통장을 개설하거나 다른 은행을 찾아야 한다. 통장개설이 불가능한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에겐 또 다른 상처가 되기도 한다.

신용불량자인 김모(35ㆍ전북 김제시) 씨는 최근 전북 부안시의 한 KB국민은행 지점에 동전 교환차 들렀다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은행 측이 “통장으로만 입금해줄 수 있다”며 현금교환을 거부한 것. 김 씨는 통장을 만들 수 없는 입장이라고 재차 말했지만 은행 측은 ‘이유가 뭐냐’ ‘예외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김 씨는 신용불량자임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김 씨는 “결국 현금으로 받긴했지만 ‘진작 말씀하시지’라며 말을 흐리던 은행 직원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며 “우리나라 신용불량자가 150만명이라는데 신용불량자는 동전 교환할 때도 개인정보를 밝혀야 하는 것이냐”며 분노했다.

한국은행과 시중은행이 이렇게 엇박자를 내는 이유는 동전 교환에 대한 명문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수신거래기본약관에도 시중은행들은 동전 예금을 거부할 수 없다는 규정만 있을 뿐 동전 교환 의무에 대해선 규정돼 있지 않다. 동전 교환이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점도 시중은행들이 동전 교환을 꺼리는 주된 이유다.

N은행 직원은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보관 공간도 많이 차지한다. 특히 한국은행으로 보내는 운송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시중은행으로서는 동전 교환이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면서 “지점별로 자체 동전 교환 규정을 두고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황혜진 기자/hhj638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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