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을 보고 사망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 말이되냐’, ‘조문단을 보내야 한다’, ‘후계체제가 불안정하다’, ‘북한 자극 자제가 바람직하다’
이같은 지적과 논란들은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과 관련한 것이 아니다. 바로 17년전 김일성 북한 주석이 사망 했을 때 국내에서 있었던 논란들이다. 그런데 가만히 비교해보면 최근 국내에서 일고 있는 각종 논란들과 판박이다.
김일성 북한 주석은 지난 1994년 7월 8일 새벽 2시에 사망했다. 북한은 사망 34시간 뒤인 9일 낮 12시 방송을 통해 김 주석 사망 사실을 처음 대내외에 공표했다. 그러자 국내에선 논란이 일었다. 34시간 동안이나 한국 정보 당국의 눈과 귀가 김 주석의 사망 사실을 몰랐던 것이 대북 정보력 부재 때문 아니냐는 질타였다.
당시 민주당 강창선 의원은 “북한 동향을 손금보듯 파악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안심하라는 말이 허언에 불과했다”고 국방장관을 몰아세웠다. 김종호 민자당 의원도 “정보수집 능력이 왜 이 수준이냐”고 지적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후 50여시간 동안이나 사망 사실을 몰랐던 현 정보 당국에 대한 의원들의 지적과 대동 소이하다.
조문과 관련, ‘가야된다’, ‘말아야 된다’는 논란 역시 17년 전에도 있었다. 민주당 측은 ‘조문사절단을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민자당은 ‘어치구니 없는 발상’이라며 각을 세웠다. 당시 일부 대학생들은 3국을 통한 방북을 기획하기도 했다. 현재는 정부가 일부 민간 조문단에 대한 방북을 제한적이나마 허용키로 하면서 17년전에 비해 조문 논란은 비교적 잠잠한 편이다.
17년 세울이 흐르면서 변한 것도 있다. 김일성 사망때는 한양대, 경북대 등에서 김 주석에 대한 찬양 글귀가 대자보나 유인물 형태로 유포됐고 경찰 단속이 뒤따랐다. 현재는 김정일 위원장 사망을 추모하는 인터넷 카페가 개설됐다. 그러나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경찰측의 설명에 카페 개설자들은 현재 카페를 자진 폐쇄했다.
사망 직후 후계 체제에 대한 불안한 시선, 그리고 며칠 후 후계자가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음을 알리는 언론 보도는 판박이다. 김일성 사망 발표 바로 다음날 당시 국내 언론들은 ‘김정일, 권력 완전장악 미지수’, ‘北, 카리스마 재등장 어렵다’고 보도했으나, 사망 발표 4일후부터는 ‘김정일 승계 마무리’, ‘권력승계 매듭 대외 과시’ 등을 제목으로 뽑았다. 현재 언론들도 사망 발표 바로 다음날엔 김정은이 아직 어리다며 김정일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한 권력 이양의 불완전성에 주목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북한이 김정은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주로 보도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2일 “북한을 적대시 하지 않는다”며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17년전 김영삼 대통령도 “북한을 자극하지 마라”며 전군 비상태세 수위를 낮췄다. 상을 당한 상대에 대한 예의는 시대를 넘는 셈이다.
<홍석희 기자 @zizek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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