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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꿍따리 유랑단의 희망찬가
김영진 감독과 세상을 향한 힘찬 의기투합…‘클론’강원래가 말하는 장애인 다큐영화 제작기
교통사고뒤 1년 지나서야 비로소 실감…

아직도 자살할 용기가 없을뿐 충동없다 말 못해

예전모습이 그리워 수없이 넘어지며 안무기획만 5년,

꿈이 실현됐을때‘춤추길 참 잘했다’싶더라

다큐영화는 인간승리 드라마가 아닌 콤플렉스를 인정하는 과정…

진심 담으려 연기자들 출연도 배제시켜

극복은 없고 수용만 있는 장애란 현실…

숨어살 수 밖에 없는, 그들만의 좌절감 표현한 뮤지컬 만들어 보고 싶어



“처음 휠체어 얘기를 들었을 때 ‘그걸 어떻게 타고 사느냐’고 물었어요. 처음 장애를 갖게 되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죠. 부모도 마찬가집니다. 흔히 ‘장애인=죄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장애인이 그래서 숨어서 살아가는 겁니다. 장애인이 왜 숨어서 사는지, 숨어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인지 알리고 싶었어요.”(가수 클론 출신 강원래)

“장애를 갖게 되면 내가 아무 쓸모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포기를 해봐서 아는데, 장애인은 자신이 존재감이 없는 걸 압니다. 저도 복직해서 출근하니까 바로 느껴지더라고요. 이번 영화를 통해 ‘우리, 쓰레기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희망을 알리고 싶었어요.”(김영진 감독)

한때 최고의 댄스가수였다가 2000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장애(척수손상마비)를 갖게 된 강원래(42). 그가 장애 예술가를 모아 꾸린 공연단체 ‘꿍따리 유랑단’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다큐멘터리 영화로 재탄생됐다.

지난해 방송된 KBS1 크리스마스 특집 드라마 ‘고마워, 웃게 해줘서’의 제작기를 담은 ‘꿍따리 유랑단’은 지난 1일 다큐멘터리 영화로 세상에 나왔다. 연출은 드라마 ‘야망의 전설’을 만든 KBS 김영진(51) 감독이 맡았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김 감독은 강원래가 교통사고가 난 바로 그 해 교통사고가 나서 1급 장애인이 됐고, 두 사람은 병원 동기로 인연을 이어가다가 의기투합해 눈물겨운 희망 다큐멘터리를 완성해냈다.

KBS 김영진(왼쪽)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꿍따리 유랑단’에 대해 강원래(오른쪽)는 “인간승리 드라마가 아닌 장애인들이 자신의 콤플렉스를 인정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꿍따리 샤바라’로 전성기→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기까지=1996년 ‘꿍따리 샤바라’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클론의 강원래. 올해로 42세인 그는 클론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2000년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댄스가수로서 좌절을 겪었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만 해도 강원래의 인생은 비교적 순탄했다. 학창시절 30등 안에도 들지 못했던 ‘꼴찌’ 강원래는 미술 실기 장학생으로 운좋게 대학에 입학했다. 중2 때부터 나이트클럽을 전전했던 그는 신나는 댄스음악을 듣기 위해 나이트클럽에 자주 갔고, 대학 진학 후에도 고교 때부터 절친이었던 구준엽과 함께 클럽에 다녔다. 강원래와 구준엽은 대학생 시절 서울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개최된 디스코경연대회에 참가했다. 이들은 이주노ㆍ양현석과 운명적인 대결을 벌이게 됐다. 이주노가 이끌던 팀은 대한민국 최고의 댄싱팀인 박남정과 프렌즈에서 활동하던 팀으로 이미 프로급 실력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강원래와 구준엽 역시 옷 잘입는 패셔니스타이자 춤 잘추는 대학생으로 입소문이 나 있었지만 이주노ㆍ양현석의 명성에는 한참 못 미치던 시절이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강원래와 구준엽은 디스코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고, 1990년 현진영의 댄스팀인 현진영과 와와로 첫 데뷔를 했다.

이들이 댄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수로 데뷔한 것은 1996년. 강원래와 구준엽은 그룹 클론을 결성, 데뷔한 뒤 ‘꿍따리 샤바라’ ‘초련’ ‘돌아와’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클론은 데뷔한 해 KMTV 가요대전 인기가수상, KBS가요대전 올해의 가수상, 서울가요대상 대상 등을 휩쓸었다. 이후에도 한국영상음반대상 본상(1997), 골든디스크(1999), 서울가요대상(1999) 등을 수상하며 인기 절정의 가수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최정상의 자리는 오래 가지 않았다. 2000년 겨울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강원래는 휠체어를 타고 생활해야 하는 장애인이 됐다. 그리고 늘 곁에서 그를 보살펴준 김송과는 2003년 10월 결혼했다.

▶“장애에 ‘극복’은 없다”…요즘도 자살 충동 느껴=“사고가 나고 1년이 지나니까 충격이 오더라고요.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내가 진짜 장애인이구나’ 실감이 나는 데만 1년 정도 걸렸어요. 장애를 극복한다고요? 극복 못해요. 그저 수용하고 사는 거죠. 일반인은 장애를 극복하는 줄 알지만, 극복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강원래는 초ㆍ중ㆍ고 시절 장애인을 만난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휠체어를 탄 사람을 주변에서 본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그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가수가 하루 아침에 장애인이 됐다. 그래서인지 “장애를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질문에 꽤나 냉소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사고 후 중환자실에서 두 달을 보낸 뒤 한 달간 병원에 누워만 있다가 4개월간 재활병원에서 지낸 강원래는 지난 11년을 돌아보면 ‘강원래의 이중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카메라 앞에서는 밝게 웃고, 인터뷰가 끝나면 눈물이 났어요.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었죠.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느낀 건데, 화내고 인상쓰는 사람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돌이켜보면 저도 병원에서 지낼 때 제 약점을 감추려고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인상을 썼던 것 같아요.”

특히 강원래는 “요즘도 자살 충동이 있다. 단지 자살할 용기가 없을 뿐”이라며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고통과 힘겨움에 대해 토로했다.

“병원에 있을 때 한번은 화장실에 들어가 휠체어에서 변기로 옮겨 앉다가 바닥에 떨어져서 바닥에서 대변을 본 적이 있어요. 20~30분간 혼자 엉엉 울다보니 창피하더라고요. 화장실 안에 벨이 있었지만, 누르고 싶지 않았어요. 결국 다시 휠체어로 올라와서 혼자 병실로 돌아와 울고불고 난리를 쳤어요. 물론 옷은 대변으로 뒤범벅이 됐죠. 장애인이 이렇게 산다는 걸 몰랐고, 어렸을 때 이런 걸 모르고 살아온 것도 기분이 나빴어요. 내가 열받은 만큼 이번 영화를 통해 장애인에 대해 알리고 싶어요.”

재활병원 시절은 그나마 그에게 장애인 친구를 많이 사귀고 재미를 안겨준 때다. 내 아픔보다 더 큰 아픔을 지닌 장애인을 알게 됐다. 장애인 사이트에 가입해서 편하게 갈 수 있는 극장이나 레스토랑을 알게 된 것도 이때다.

“장애의 종류가 몇 가지인 줄 아세요? 총 15가지예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선천적인 장애보다는 중도 장애가 훨씬 낫더라고요.”

▶5년 만에 화려한 컴백…장애를 ‘인정’하고 살아가는 이야기=강원래는 “주치의 선생님이 강원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은 휠체어를 타고 밝게 춤을 추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교통사고가 난 지 5년이 지나자 이뤄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역시 춤을 췄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5년 7월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통해 컴백 무대를 갖게 됐다. 5년 만에 5집 앨범 ‘빅토리’로 컴백한 강원래는 “무대가 그리웠다. 무대에 올랐을 때 팬들의 박수가 그리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원래는 컴백 무대를 준비하기까지 200번 넘게 넘어지면서 안무를 만들고 연습을 거듭했다고 했다. 화려한 컴백으로 힘을 얻은 강원래는 다큐 영화도 만들었다. 김영진 감독 함께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꿍따리 유랑단’은 1996년의 히트곡 ‘꿍따리 샤바라’에서 이름을 따왔다.

“ ‘꿍따리 샤바라’는 누구나 부르기 쉬운 노래예요. 장애인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이고, 예전에 밤업소 다니면서 ‘우리도 유랑단 생활이네’란 생각을 한 적이 있어서 영화 제목으로 만들게 됐어요.”


그가 이번 다큐 영화에 대해 갖는 생각은 확고하다.

“장애를 극복하는 인간승리 드라마가 절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장애를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장애인이 막상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면 또 다시 어딘가로 숨고 싶은, 자신의 콤플렉스를 인정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예요.”

그가 장애인 다큐 영화를 생각하게 된 건 다큐 영화 ‘워낭소리’를 본 것이 계기가 됐다. 워낭소리를 6번이나 보고, 장애인에 대해 잔잔하게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병원 동기였던 김 감독에게 제안을 했다. 10년 가까이 작품을 만들지 못하고 있던 김 감독에게도 다시 한 번 뭔가를 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제작 과정에서 이견이 있었다. 바로 배우를 전문 연기자가 할지, 장애인이 직접 할지에 관한 문제였다. 강원래는 전문 배우가 하기를 바랐다. 배우 강혜정에게서 “하겠다”는 답변도 받아냈다.

“조승우가 없는 영화 ‘말아톤’, 문소리가 없는 영화 ‘오아시스’를 생각할 수 있겠어요? 이런 영화를 만일 실제 장애인이 연기를 했다면 배우만큼 전달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기존 배우가 나와서 능숙하게 장애인 연기를 하길 바랐어요.”

하지만 김 감독은 “배우 쓸 일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김 감독은 “연기는 기술이 아니다. 마음이다. 장애인이 스스로 자기 마음을 보이면 된다. 거칠고 서툰, 그래서 더 좋다. 마음을 보여야 한다. 장애인이 연기를 하는 것이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장애인에게 “뭘 해도 좋으니 연기는 하지 말아라. 진심을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결국 장애인이 직접 출연하는 것으로 결정됐지만, 촬영 진행이 순탄치는 않았다. 대놓고 자신의 콤플렉스를 드러내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연기를 해본 경험이 없는 장애인은 뜻하지 않은 감독의 요구에 당황했고 화를 내기도 했다.

살면서 한 번도 휠체어에서 양손을 놓은 적이 없는 주인공 김지혜는 이번 영화에서 난생 처음 휠체어에서 손을 놓았고, 수도 없이 땅바닥을 구르며 열성을 다했다. 또 오른팔이 없는 무에타이 선수 최재식은 장애를 리얼하게 표현하기 위해 “상의를 노출하라”는 김 감독의 주문에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일상에서는 노출하지 않는데 왜 벗으라고 하느냐”는 최재식의 불만에 강원래는 “그게 너의 진짜 모습이야. 자꾸 숨기려고 하니까 사람들이 더 들춰내려고 하잖아”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꿍따리 유랑단’은 한 팔이 없는데도 한국 무에타이 챔피언까지 오른 최재식, 장애인가요제 금상 수상자인 심보준, 한손 마술로 유명한 조성진, 선천적으로 작은 키를 가지고 태어난 트로트 가수 나용희 등 실력파 문화예술가로 구성돼 있다.

이번 다큐 영화에서 내레이션을 맡은 강원래는 “처음 해본 일이었는데, 칭찬도 들었고 만족한다”며 “장애를 수용하기까지 1~2년이 걸리는데, 다 찍어놓은 걸 보니 많은 이가 장애에 빠지고 좌절하게 될 때 이런 표정이 나오는구나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 영화가 망하든 흥하든 학생들이 많이 보고, 장애인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리고 이번 영화의 확장판으로, 전문 배우가 나오는 뮤지컬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웬만하면 아이돌 스타가 나와서 장애인 연기를 하는 뮤지컬을 만들어 보고 싶다. 올해 ‘꿍따리 유랑단’ 공연은 끝났지만, 내년에도 후원을 받아 대중에게 널리 보여주고 싶다. 연극영화 공부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강원래에게서 끊임없는 에너지가 샘솟고 있음을 느꼈다.

장연주 기자/yeonjoo7@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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