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박태준의 리더십... "그는 시대를 관통하는 현대경영의 그루"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시대를 뛰어넘은 리더십이 재조명되고 있다. 청렴, 책임감, 인간존중, 미래에 대한 혜안 등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포항제철 건설 신화를 일굴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군인 출신으로 경영에 문외한이었던 박 명예회장이 대한중석 사장을 거쳐 포항제철 건설을 책임지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데는 청렴과 책임감, 결단력이 큰 역할을 했다.

국가주도형 경제개발 모델의 상징인 포항제철 건설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도전이었다. 부족한 자금을 메우기 위해 유럽과 일본 등을 돌면서 차관을 끌어오는 책임도 그가 져야 했고, 대형 건설사업을 통해 사적인 이익을 취하려는 권력 실세들의 외압을 견뎌내야 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실제 포항제철 건설 공사가 한창이던 당시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박종규 청와대 실장의 청탁을 거절한 사례는 유명하다. 박 명예회장은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며 청탁을 뿌리쳤고, 그의 청렴함과 강직함을 알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믿음이 뒷받침되면서 그 누구도 포항제철 건설을 통해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지 못했다. 그 덕에 포항제철은 당시 건설공사의 관행이나 다름 없었던 부실이 거의 없는 제철소로 탄생할 수 있었다.

박 명예회장의 리더십은 직원에 대한 복리후생과 경쟁력의 원천인 교육, 그리고 환경 등 미래를 꿰뚫는 혜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포항에 제철소를 짓기로 하고 건설에 착수한 이후 박 명예회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이 사원주택과 학교, 그리고 각종 편의시설을 짓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직접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공장 건설도 중요하지만 직원들이 편안해야 모든 일이 제대로 풀릴 수 있다는 신념이 밑바탕이 된 결단이었다. 덕택에 임직원들은 박 명예회장을 진심으로 따랐고, 포항제철은 당시 건설된 제철회사 가운데 최단 기간 완공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박 명예회장의 교육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다. 1971년 보험료를 지급할 만한 사고가 한 건도 없었던 데 대한 보상 차원에서 포항제철이 보험에 가입했던 보험사로부터 17만달러에 달하는 리베이트가 지급됐다. 당시 이러한 리베이트는 해당 기업 사장이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박 명예회장은 이를 활용해 포철장학재단을 설립했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내린 결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박 명예회장은 과학기술 향상이 절실하다는 생각에서 포항공대(현 포스텍) 설립을 추진했다. 캘리포니아공대, 조지아공대, 메사추세츠공대 등 세계 유수 공대 수준의 학교가 있어야만 미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 결과 포항공대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학으로 발돋움했고, 지금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박 명예회장은 또 환경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제철소를 꿈꿨다. 포항과 광양 두 지역에 300만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공장 주변을 장미로 가꾼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1986년 5월 포항제출을 방문한 마가렛 대처 당시 영국수상이 “공원처럼 아름다운 제철소 환경에 정말 놀랍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이미 30년 전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투명 경영, 탄소 경영, 인재 경영 등 선진 경영의 철학을 그대로 실천했던 고 박태준 명예회장. 이처럼 교육, 환경 등 미래를 준비하는 박 명예회장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포스코가 오늘날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춘 종합제철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는 게 업계의 한결같은 평가다.

<이충희 기자 @hamlet1007>

hamlet@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