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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뿌리~’, 100분 토론 보는듯 하다
SBS 사극 ‘뿌리 깊은 나무’는 글자를 권력의 관계에서 집중 조명하고 있다. 글자에 대해 가진 각각의 생각으로 권력을 배분하는 방식을 극과 극으로 나눈다. 세종 이도(한석규)와 밀본 정기준(윤제문), 강채윤(장혁), 좌의정 이신적(안석환), 부제학 최만리의 한글을 바라보는 시각이 각각 다르다. 우리는 역사적 결말은 이미 알고 있다.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이 만든 한글이 반포된다는 것을. 사극에서는 역사가 스포일러다.

하지만 ‘뿌리~’는 너무 재미있다. 팽팽한 긴장감을 준다. 결말을 아는데도 재미와 긴장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각자의 논리 대결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100분 토론’ 이상이다. 이도가 가끔 내뱉는 “지랄하고 자빠졌네”라는 말만 사용하지 않는다면 대사를 오롯이 ‘100분 토론’에다 심어도 괜찮을 것 같다. 칼이 아닌 글로, 말로 서로를 베어버릴 기세다.

밀본 본원인 정기준은 글짜의 힘을 잘 알고 있다. 밀본은 이도가 집현전 폐지라는 조건을 걸고 한글을 반포하려는 의도를 알아차렸다. 본원은 “사대부가 권력을 지닐 수 있는 건 유학을 알고 한자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글자를 알면 사대부의 권력이 무너진다”면서 “글자가 반포되면 성리학과 관료체제의 뿌리가 흔들린다. 집현전 폐지는 글자를 유포시키기 위한 왕의 술수다”고 말한다.

하지만 재상 체제의 우두머리가 되고 싶은 이신적은 “본원께서 주상의 글자가 반포된다 해도 아무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냐”며 맞서자, 본원은 “해가 서쪽에서 뜨게 하는 글자다. 글자는 누구도 알아선 안 된다. 그건 역병이야”라고 반박했다.

본원은 “왕과 관료는 잘못하면 책임을 진다. 백성이 잘못하면 이를 갈아치울 수 있느냐. 성리학이 조선을 이끌지 못하면 조선은 망한다. 글자를 막아야 한다”고 하고, 이신적도 “본원이 오랫동안 야인으로 있어 감이 떨어진 게 아니냐. 글자가 무슨 권력이냐”고 말해 토론은 일단락됐다.


지난 1일 방송에서도 글자와 권력에 대한 ‘100분 토론’은 이어졌다. 이번에는 언문 창제 반대 상소를 올리는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와 이도 간의 설전이다.

최만리는 글자가 가져올 어지러움을 역설했다. 질서가 무너진다고 했다. 이에 이도는 “어차피 무너진다. 관료제를 유지하는 과거제, 그 시험은 무엇으로 보느냐. 너희만 아는 한자로 본다. 한자를 아는 사람만 관리가 되는 것 아니냐”면서 “그래서 100년이 지나면 서얼이 생기고, 200년이 지나면 양반이 생기고, 300년이 지나면 양반을 사고팔지 않겠느냐. 그 폐해를 막는 방법으로 글자를 만든 것이다”고 말했다.

최만리는 “노비, 사농공상을 없앨 수 있습니까”라고 맞서자, 이도는 “그래 없앨 수 없다. 그래서 싸우면서 타협책을 모색하자는 것 아닌가. 그렇지 못하면 조선도 고려처럼 사라진다. 조선이 천세만세 이어질 줄 아느냐”면서 “조선을 어떻게 다르게 할 것이냐, 백성을 위한 대의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 이것이 나의 답이다”고 역설했다.

이도는 “글자가 최종 답임을 정기준도 알 것이다”면서 “글자에 대해 토론하고 증명하고 가치가 있는 것임을 알리겠다”고 설파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동기를 우리는 역사시간에 배웠다. 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 이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겼다는 훈민정음 창제 원리를 다들 외운다. 하지만 ‘뿌리~’처럼 글자와 권력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현재의 모순도 얼핏 연상되게 하는 사극은 없었다. 이쯤 되면 비록 사극이라 해도 역사 교재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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