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에 회사채 관련 투자자 소송이 잇따르며 부실한 회사채 평가 및 판매체계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신평사는 수익원이자 평가대상인 발행사 눈치를 보고, 증권사는 수수료 수입에만 열을 올리다보니 투자자 피해만 커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최근 대한해운 회사채에 투자한 130여명은 발행주간사였던 현대증권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증권은 지난해 11월 대한해운의 유상증자와 회사채 발행의 주간사 업무를 맡아 공모를 진행했는데 불과 두 달만인 올해 1월25일 대한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 200억원의 손실을 봤다는 내용이다.
최근 서울남부지법은 투자자 유모씨가 발행사인 성원건설의 부실 여부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며 채권발행을 주관한 키움증권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를 판결했다.
이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회사채를 평가해야 할 신용평가사가 평가대상인 발행사로부터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기업의 재무상태 등을 소신껏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서 비롯된다. 올해 경기가 부진했음에도 3분기까지 신용등급 상향조정은 31개사나 되지만, 하향조정은 4개사에 불과했다. ’신용 인플레이션’인 셈이다. 증권사 입장에서도 부도만 안나면 되는데, 굳이 위험을 더 알려 돈벌이 되는 회사채 판매를 위축시킬 필요가 없다.
이러다보니 발행사와 증권사, 발행사와 신평가 간 유착현상도 있다. 대한해운 회사채 발행 주간사였던 현대증권은 대한해운 직원과 해외를 다녀왔고, 체류기간 중 골프도 친 것으로 알려졌다.
신평사 역시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접대를 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발행사는 ‘갑’이다.노골적인 압력은 아니어도 등급을 올려달라는 요구를 많이 한다. 이 때문에 최근 신용등급은 상향 평준화됐다”고 말했다. 국내 3대 신평사 중 하나인 A사의 작년 회계연도 접대비는 5억5000만원이다. 전년(2억6000만원)보다 배 이상 늘었다. 매월 약 4500만원, 매월 22일 영업일 기준 하루평균 200여만원이 접대비로 지출된 셈이다. 접대 대상에는 평가대상인 발행사도 포함된다.
한편 이런 부작용을 차단하고자 금융당국은 연내 회사채 발행업무에 대한 모범규준을 내놓을 예정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주간사인 증권사의 투자자에 대한 주의의무(Due Diligence) 기준을 명확히 하는 모범규준을 마련 중이다. 모범규준을 만족한다면 주간사나 회사 측이 투자자들과 분쟁할 여지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