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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배의 역사’ 앞에서 무너진 ‘계백’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황산벌 전투’, 역사가 기억하는 한 분명한 패배의 전투다. 거대한 장수의 장렬한 죽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와 임금을 섬긴 충신, 백제의 이 비극적인 영웅이야기 ‘계백(정형수 극본, 김근홍 연출)’이 22일 막을 내렸다.

MBC 월화사극 ‘계백’은 10.6%의 전국 시청률로 안방에 상륙한 이후 평균 시청률 12.2%를 지켜오다 13.0%의 시청률로 36부 대장정을 마치게 됐다. 첫 방송에 비한다면 소폭 상승한 수치이긴 하지만 ‘계백’의 힘은 월화 안방에서 그리 막강하지 않았다. 정통 멜로극 ’천일의 약속‘과 캔디형 역전극 ‘영광의 재인’과 경쟁하며 줄곧 2위 자리를 지켜온 ‘계백’, 조재현 이서진 오연수 등 출중한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하고 ‘선덕여왕’을 연출한 김근홍 PD와 ‘다모’의 정형수 작가가 만난 대하사극이라는 점에 비한다면 다소 저조한 흥행이었다. 특히 드라마가 초반 상승세를 타며 시청자들을 끌어들였던 것을 생각한다면 중반 이후의 하락세는 ‘계백’ 스스로 잔혹한 패배의 역사 앞에 무릎을 꿇은 모양새다.


‘계백’의 눈에 띄는 하락세에는 이 대하사극이 보여준 몇 가지 단점이 두드러지게 노출됐다. 매력없는 캐릭터, 선악으로 양분된 구성, 메시지의 부재가 바로 그것으로 이 세 가지 문제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오래 붙잡지 못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먼저 캐릭터의 문제다. 드라마는 초반 사택비(오연수)와 무진(차인표), 무왕의 삼각구도, 그리고 계백(이서진)과 의자(조재현) 등 스스로 재해석한 캐릭터를 통해 흥미를 유발했다. ‘악의 경계’에 서있는 사택비와 ‘선의 증거’였던 무진, 역사상 가장 극적으로 왕위에 오른 무왕의 관계는 ‘계백’의 주요시청층을 만들어내는 일등공신이었다. 하지만 의자가 보위에 오르며 중반부에 돌입했던 당시부터 드라마 속 인물들은 과거를 장렬히 살아온 역사적 인물이 아닌 극단으로 치우치는 인물들로 변모하게 됐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군왕, 여장부에서 간사한 매국노로 변해버린 은고(송지효), 우직하지만 지나치게 답답한 계백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매력도 발산하지 못하는 주요인물들의 모습은 애정보다는 실망만 안기고 말았다.

거기에 더해 드라마는 등장인물들의 성격 만큼이나 단순한 구성으로 스토리가 전개됐다. 노상 극단적인 선악을 구분함으로써 입체적이기보다는 평면적인 구성으로 극의 재미를 반감시켰다. 극단에 치우친 인물들이 끌어가는 스토리이기에 충직하거나 배신을 일삼거나, 정의를 실현하거나 정의에 반한다는 이분법적 전개는 피할 수 없는 함정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메시지의 부재’였다. 그동안 보아온 역사극은 그안에 온갖 술수와 권모가 넘쳐났다. 묘미는 거기에 있었다. 그 권모술수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우리 시대의 어그러진 모습이나 지향점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계백‘은 매체를 통해 다루지 않았던 백제라는 미지의 왕국을 다루면서도 그 나라를 통해 받아들일 어떠한 메시지조차 남기지 못했다. 뿐아니라 ‘우직한 충신’ 계백의 매력조차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 채 ‘궁상맞은 러브스토리’로 이야기가 나아가자 시청자들은 금세 드라마를 외면하게 됐다.

결국 드라마는 계백이라는 비운의 장수를 재조명하며 백성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충신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인재임을 역설했다면, 또한 역사에서의 백제는 패망국이지만 그들이 펼쳐보인 정치와 신념이 무엇이었는지를 재조명하며 이 어지러운 현실을 위로받을 단서를 제공했다면 꽤 성공적이었지 모르겠다. ‘계백’은 하지만 그것에서도 실패하고 말았다. 

하나를 더해 무엇보다도 '계백'은 패배한 나라의 역사를 그리면서 백제의 패망요인을 제대로 짚어내지 않았다는 점은 드라마의 실패 요인으로 거론된 사항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부분으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됐다.

<고승희 기자 @seungheez>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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