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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링’ 위에 선 투견들, 지금 그 곳엔…
아무도 그들의 눈빛을 읽지 못했다. 하염없이 피를 흘려도, 초점을 잃은 눈으로 바라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괜찮아’였다. ‘살기 위해’ 서로를 물어뜯어야 했다. 그것이 모두가 원하는 것, 사람들은 그들에게 광기 어린 음성으로 또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물어 뜯으라고.

이 곳은 한 판에 1000만원이 오가는 한밤의 투견장. 사람들은 돈을 걸고 죽음의 싸움을 즐겼고, ‘죽음의 링’ 위에 선 투견들은 매일밤 처참히 스러져나갔다.

20일 SBS ‘TV동물농장’에서는 투견들의 충격적인 학대 현장이 공개됐다. 한 제보자를 통해 알려지게 된 이 곳 투견장은 한밤중에도 성황이었다. 불빛 속에 주차된 차들, 간이식당까지 차려놓고 음식을 팔고 있는 이 깊은 산중은 여느 유흥가 못지 않은 쾌락으로 흥분 상태였다.

진돗개들의 싸움이 시작이었다. 새하얀 털이 피로 물들수록 사람들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고 그럴수록 ‘괜찮아, 뜯어야지’라는 비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잔인한 게임의 현장은 단속되는 법도 없었다. ‘단속이 떴다’는 소식이 전해들면 사람들은 더 깊은 산중으로 이동해 또다른 투견장으로 몰려갔다.

이번에는 ‘투견을 위해 만들어진’ 핏불테리어의 싸움장. 더 많은 돈이 걸려있는 만큼 더 광적인 게임이었다. 속칭 ‘끝보기 싸움’. 죽기 위해 싸우는 투견들의 삶이 바로 이 곳에 있었다.

‘철저하게 싸우기 위해’ 길러진 개들의 삶은 처참했다. 영광스러울리 없는 처절한 상처들을 안고 사는 투견들의 눈은 두려움과 불안감뿐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물어뜯으며 매순간 긴장 속에 산다. 투견 훈련소의 그들은 끝없이 짖고 있었지만 그것은 혈기 왕성한 투견들의 공격적 발성이 아닌 지치고 두려운 외침일 뿐이었다.

아무리 싫다고 발버둥쳐도 소용없었다. 투견으로 생존하기 위한 그들의 삶은 더 큰 고통이었다. 

목에 쇠줄을 매단 채 하염없이 런닝머신을 달려야 한다. 매일 한 시간씩 죽도록 그 위를 달린다. 쉬고 싶어도 목줄이 숨통을 조여오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다. 그리고 두 달 뒤엔 죽기 위해 혹은 살기 위해 싸우러 떠난다. 죽을 때까지 싸우다 쓰러진다 해도 항생제를 투여하거나 연고를 바르는 것이 전부인 투견들은 에너지가 다 하고 나면 결국 보신탕집으로 향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들의 탐욕과 쾌락을 위해 살고 있을 뿐이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인 ‘지옥같은 현실’ 속의 투견들이지만 현행법상 ‘학대에 가까운 훈련, 임의 치료 행위 처벌은 불가능한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이에 대해 “미국이나 유럽 연합의 경우 동물에 정당한 사유없이 물리적 고통이나 심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를 학대로 보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정당 사유없이 죽이거나 상해 입히는 행위만 학대로 규정하고 있어 이런 경우는 학대로 처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날 방송이 전파를 타자 시청자와 누리꾼들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사람이라는 이유로 말 없는 동물들이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현실을 만들고 돈을 걸고 그 이후에도 끝없는 학대가 자행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현행법을 개정해서라도 이 잔인한 도박을 근절해야만 한다(@sung****)”고 강하게 주장하는가 하면 “인간의 탐욕으로 쓰러져가는 투견들의 운명. 비단 투견들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지. 인간만큼 잔인한 생명체는 이 세상에 없다.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다(@macy”는 자조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 잔혹한 현실에 눈 감고 단속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실태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오늘 동물농장에 나온 투견. 거기에 매번 경찰은 30, 40만원으로 매번 투기단속을 눈감아주는 현실. 대한민국 경찰 재밌고 믿기 힘드네요. 불법인줄 단속나가서 돈 받고 온다?(@sl****)”라면서 냉소적인 반응을 전했다.

비난과 반성의 목소리를 높이며 이날 방송에 관심을 기울인 누리꾼들은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게시판을 통해 ‘동물농장’에 나온 ‘투견’ 법 제정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적극적인 동물보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현재까지 2323명의 누리꾼들이 투견 법 제정에 서명했다.

<고승희 기자 @seungheez>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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