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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상상력사전> 존·엄·사
만물이 생명을 다하는 조락(凋落)의 계절이다. 스산한 바람 끝에 머무는 죽음의 소식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한다. 인간의 한계를 넘나들던 박영석 대장은 보통사람이 출퇴근길 다니듯 그가 반평생을 오르내렸던 산 언저리 흰 눈 속에 파묻혔다. 인류사 아무도 가지 못했던 길을 걸어왔던 스티브 잡스는 화려한 명망을 뒤로 하고 모두가 가야 할 길로 떠났다. 70~80년대 청춘영화의 스타였던 배우 김추련이 옛 영화를 접고 질병과 외로움 속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안타까운 부음도 있었다. 어찌 허망하지 않고, 애끊지 않는 죽음이 있을까. 지인과 유명인들의 죽음을 접하면서 산 자들은 자신의 삶과 죽음의 무게를 다시 한 번 달아본다. 나는 어떻게 살다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을까. 호스피스운동의 선구자로 꼽히는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인생수업’이라는 저서에서 “죽음의 문턱에 선 사람들은 그 순간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철학자 니체는 “죽음, 그리고 죽음의 정숙함이야말로 우리 미래에서 유일하고도 확실하며 모두에게 평등하다! 이 유일하고 확실하며 평등한 사실이 인간에게 아무런 힘도 미치지 못한다니, 또 인간들은 자신이 죽음의 형제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한다니 이 얼마나 괴이한 일인가!”라고 말했다.

영화만큼 죽음을 자주 다뤄왔던 대중예술 매체도 없을 것이다. 스크린의 도처에서 죽음을 만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죽음이란 삶의 가장 극적인 계기이자 경험, 형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최근 개봉한 인도영화 ‘청원’은 비유적 의미에서 ‘존엄사’, 엄격하게는 ‘안락사’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공연 중 사고로 십수년간을 전신마비 환자로 살아온 인도 최고의 마술사가 라디오 DJ를 맡아 삶의 경이를 예찬하며 시련에 처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지만 자신은 결국 법정에 안락사를 청원한다는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존엄사’는 말기암환자나 죽음을 앞둔 이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고 자연사에 이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안락사’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견디며 사는 환자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끊는 행위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주연의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나 하비에르 바르뎀 주연의 ‘씨 인사이드’ 역시 안락사 문제를 다룬다.

‘청원’에서 주인공은 마지막에 자신이 아끼고 사랑했던 모든 이들을 부르고, 춤과 노래를 부르며 잔치 같은 하루를 보낸다. 최근 출간된 일본 호스피스 전문의 오츠 슈이치의 ‘후회없는 죽음을 위해 꼭 알아야할 것들’을 비롯한 호스피스 관련 저서들에서 권하는 ‘죽음을 맞는 방법’과 맞닿아 있는 장면이다. 이들 저서가 한결같이 권하는 것은 “죽음에 대해 더 많이, 더 자주 이야기할 것”이다. 그것은 꼭 말기암환자나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해당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더 잘 살기 위해 우리는 더 자주 ‘잘 죽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의학이 아닌 비유적인 의미에서 존엄사, 곧 존엄한 죽음은, 스스로 살아온 삶에 대한 예의이자, 삶을 예찬하는 가장 마지막 방법이 아닐까.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도 있거니와. 

/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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