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국가부도의 역사
역사상 첫 디폴트는…에게해 델로스섬서 첫 발생
‘돈 부족하면 또 빌린다’
끝없는 차입으로 재정파탄
21세기 그리스와 닮은꼴
새로운 질서의 변곡점
獨 합스부르크 왕가 몰락전
14차례나 디폴트 선언
16세기 佛·스페인·포르투갈
르네상스 꽃도 시들어
더 큰 문제는…
베네수엘라·에콰도르 등
건국 이후 10번씩 국가부도
재정건전화 의지도 희박
국가 부채관리 의식이 중요
‘역사와 신화의 나라’ 그리스가 인류에 남긴 유산은 ‘직접민주정치’만이 아니다.
오늘날 국가부도를 기정사실화 하며 세계를 위기 국면에 몰아넣은 진원지는 그리스와 이탈리아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적으로 나라 파산의 공포를 세상에 처음 전한 것도 그 나라들이다. 원인도 당시나 지금이나 거의 같다.
역사상 처음 기록된 디폴트는 기원 전 4세기 그리스의 델로스 섬에서 발생했다. 에게해 중심에 있는 이 작은 섬은 지리적ㆍ종교적 요충지였던 탓에 해마다 엄청난 현금과 물산이 몰려들었다. 이렇게 생긴 부(富)를 바탕으로, 델로스 섬은 금융사업을 벌인다. 하지만 기원 전 4세기 경 돈을 빌려줬던 인근의 13개 도시국가들이 동시에 파산 선언을 하면서 최초의 디폴트가 일어났다. ‘돈이 부족하면 또 빌리면 된다’는 생각에 끝없이 차입을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이탈리아도 디폴트 부분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이었던 로마를 무너뜨린 것은 무분별한 화폐 발행과 선심성 복지정책으로 인한 재정 파탄이었다.
세계경제를 휩쓰는 국가부도는 사실 꾸준히 세계 곳곳에서 빈번하게 발생해왔다.
남미의 베네수엘라나 에콰도르 같은 나라는 건국 이후 최근 몇 십년 사이에만 이미 10번씩 국가부도를 내면서 가장 많이 전 세계적으로 ‘맘대로 해봐’를 외친 나라로 악명 높다. 원래 빚이란 게 커지면 커질수록 갚을 사람 입김이 세진다. 나자빠지면 빌려준 사람도 망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엔 통화가치를 절하해 버리곤 했다. 돈의 가치를 30% 내려버리면 빚이 30% 줄어드는 것과 같다.
역사적으로 보면 디폴트는 새로운 질서와 경제체제를 가져오는 변곡점 역할을 했다. 인본주의 문화를 꽃피우던 르네상스의 파도를 되돌린 것도 16세기에 연이어 터진 프랑스와 스페인 포르투갈의 국가부도 사태 때문이었다.
거대한 제국이 몰락하는 시점에서도 어김없이 디폴트가 터져 나왔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절대 권력이었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몰락 직전 14차례나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혁명 직전 프랑스는 국가 수입의 62%를 부채 처리에 사용했다. 오스만 제국도 몰락 직전 국가 수입의 절반을 부채 상환에 썼다.
과거의 모든 사례들이 말해주는 것은 과도한 지출로 인한 재정구조 악화가 디폴트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결국 디폴트를 피하는 길은 재정 건전화에 대한 의지인 셈이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얘기다.
2001년 국가부도를 선언했던 아르헨티나에 대해 IMF는 “정부가 재정 건전화에 더 강한 의지를 보였다면 디폴트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때 얻은 교훈은 2008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적절히 활용됐다. 오히려 너무 가혹해서 문제였다. 나중에 캉드시 총재가 윤증현 재정부 장관에게 미안하고 할 정도로.
복지 지출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 시대에 국가들이 빚없이 나라 살림을 꾸리기는 불가능하다. 과연 어느 정도의 빚 부담이 적정한지 검증된 바도 없다. 다만 독일의 경제학자 고트프리트 봄바흐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느 정도가 적절한 국가부채 수준인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한도에 도달했는지는 누구나 안다”
대한민국과 같은 수출주도형 경제하에서는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다.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으면 당연히 재정적자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디폴트는 위기다. 하지만 남의 위기는 나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의 델로스 사태에서 유일하게 빚이 없었던 도시국가가 아테네였다. 아테네는 사태 이후 더욱 역사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홍승완 기자/ sw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