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국제신용평가사가 모두 LG전자에 대한 신용등급 및 등급전망을 조절했지만, 국내 신평사는 요지부동이다. 마치 국내 증권사들이 각종 사업관계로 얽혀 있는 국내 기업에 ‘매도’ 보고서를 내지 못하는 것처럼, 신평사들도 주요 고객인 발행사, 즉 대기업 등의 눈치를 보느라 등급현실화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한신평과 한기평의 경우 각각 국제3대 신용평가사로 꼽히는 무디스(Moody’s)와 피치(Fitch)의 자회사라는 점에서 신뢰도에 대한 논란을 키우고 있다.
무디스는 지난달 13일 LG전자의 신용등급 Baa2에 대한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했다. 하지만, 자외사인 한신평은 이 종목의 신용등급 AA를 유지하고 등급 전망도 바꾸지 않았다. 피치도 LG전자의 신용등급 BBB에 대한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했지만 한기평 역시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오랜 역사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진 국제신용평가사의 비교우위, 모자관계, 그리고 LG전자가 유상증자까지 발표한 상황을 감안할 때 시너지 차원에서라도 최소한 등급이나 등급전망 유지에 대한 평가가 나올법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황인덕 한기평 평가기획실장은 9일 ”한국 신평사는 생긴지 최대 25년가량 됐는데, 외국계는 100년이나 된다. 국제 신평사들은 경험에서 나오는 지식과 데이터베이스 보존 능력에서 출중하다“고 평가했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모회사와 자회사의 신용평가가 다른 것은 단지 국내외 기준의 차이 때문이라고 보지 않는다. 국제 신평사들 자신은 특정기업의 신용등급을 과감하게 강등하면서도 자회사의 미온적인 반응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것은 배당금과 연결되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무디스가 한신평과, 피치는 한기평과 제휴를 맺었고, 각각 2001년과 2007년 두 국제신평사는 국내 신평사의 최대주주가 됐다. 당초 금융당국도 정책적으로 외국계 신평사와 국내 신평사의 제휴를 장려했다. 이제 두 국내 신평사의 이익은 모기업인 무디스와 피치에 고스란히 배당으로 돌아간다. 실제 배당성향도 거의 순이익과 맞먹는 규모다.
한편 1998년 175억원 규모였던 한국 신평시장은 작년에 753억원 규모로 불어났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조달 자금의 장기화 추세로 회사채 시장이 크게 확대된 덕택이다. 향후 ‘바젤Ⅲ’ 등이 발효되 여신을 통한 차입보다 회사채 발행을 통한 간접자금 조달이 확대될 경우 시장은 더욱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