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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십억 자산가? 알고보면 ‘빚부자’
가계부채 900조원시대 대한민국 부자들의 자화상
부동산 호황기때 대출로 부동산 매입 무리수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산가치 급락·이자비용 급증

가처분소득 급격히 줄어 생활비 마련에도 허덕


10억이상 자산가 40%가 상환능력 취약계층

한국판‘ 모기지 사태’땐 가계도 국가도 위기



총자산이 25억1637만원인 김모 씨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부자’에 속한다. 하지만 늘 대출금을 갚느라 생활이 빠듯하다. 김 씨는 지난해 사업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주택과 토지를 담보로 시중은행에서 16억4500만원을 빌렸다. 대출금리는 연 6.5%. 아직 거치기간이 남아 있어 매월 895만원씩 이자만 내고 있다.

김 씨는 연 1억6040만원(월 1337만원)을 벌고 있지만 이자비용, 세금, 공적보험 등을 제외하면 가처분소득은 연 1337만원(월 115만원)에 불과하다. 때문에 대출 거치기간이 끝나고 원금까지 갚아야 할 경우 ‘채무불이행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장기 침체된 부동산 경기가 하루 빨리 풀리지 않는다면 김 씨는 자산을 다 팔아도 ‘빚쟁이’로 전락할 수 있다. 전업주부인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면 김 씨의 한숨은 더 깊어진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900조원에 육박하면서 10억원 이상 자산을 가진 부자가구(42만4000가구)도 빚에 허덕이고 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서민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최근 나온 통계를 보면 ‘빚쟁이 부자’가 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하우스 푸어(House Poor)에 이은 부동산 푸어인 셈이다.

이성남 민주당 의원이 ‘2010 가계금융조사’를 토대로 분석한 ‘대한민국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김 씨처럼 10억원 이상 자산가이면서도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가구가 8만4000가구(7.5%), 대출금 만기 연장을 해야 상환이 가능한 가구는 33만6000가구(30.1%)에 달했다. 부자의 약 40%가 ‘부채상환능력 취약계층’이라는 얘기다.


특히 부자가구의 채무상환비율은 51.6%로, 소득 하위 20%인 소득 1분위 가구와 불과 7.7%포인트밖에 차가 나지 않는다. “부자가구는 부채상환 여력이 있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빚 때문에 생계까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빚쟁이 부자가 생겨난 이유는 뭘까. 답은 ‘집’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집은 자동차, 직업 등과 함께 부의 상징이 됐다. ‘어디에 사느냐’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판가름할 정도다. 특히 교육환경이 좋고 교통이 편리하며, 자연친화적인 생활이 가능한 동네는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부자는 과거 부동산 호황기 때 무리하게 대출을 받더라도 이런 곳에 집이나 땅을 매매해 시세차익을 노렸다. 이른바 ‘부동산 재테크’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가 침체되면서 부동산 자산 가치는 떨어진 반면 대출 이자비용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부동산업계에선 2008년과 비교해 서울ㆍ수도권 지역 주택 가격이 15~20% 정도 하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컨설팅업체인 리얼투데이 김광석 실장은 “일부 지방을 제외하곤 과거처럼 부동산 투자로 큰 시세 차익을 얻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 씨의 경우 총 자산은 25억원을 조금 넘지만 대출금과 이자를 빼면 9억원에 못 미친다. 이것도 부동산 시장이 좋았을 때 거래된 가격이다. 지금과 같은 경기 불황이 계속되면 김 씨는 단박에 중산층 가구로 내려앉을 수 있다. 가처분소득만 보면 김 씨는 이미 연 소득 2000만원 이하인 저소득층이다. 대출금 거치기간이 연장되지 않으면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빚 독촉에 시달리게 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영일 연구위원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강화되지 않았을 때는 주택가격의 60%까지 대출(LTVㆍ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이 가능했다”면서 “소득이 없는 가운데 대출을 많이 받아 부채상환능력이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부동산 담보대출이 ‘독’이 된 것이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중 70%가량이 LTV에 적용된 대출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문제는 제2의 금융위기가 닥친다면 한국판 ‘모기지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금융회사는 대출 상환 만기 연장을 거부한 채 대출금 회수에 나서고, 빚더미에 몰린 부자는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갚지 못해 결국 부도 가계와 부실 금융기관이 대거 양산된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을 준비하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주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가계부채 문제는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면서 “가계부채 총량을 줄이는 동시에 가계소득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부동산 시장 안정대책도 병행해야 한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사장은 “부동산 담보대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침체된 부동산 경기를 살리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진성 기자/i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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