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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마을1축제>(컨설턴트의 눈)질마재 축제, 불통을 소통으로 바꾸다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가을이면 저절로 시 한 수가 떠오르는 건 이 계절이 가진 특성 때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하나의 생애를 압축한 것이라면, 가을은 찬란하게 빛났던 봄과 여름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성숙과 사색의 계절이다. 우리는 어쩌면 그 노오란 꽃잎 하나를 피우려고 그토록 무서리 내리는 밤과 불면의 밤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가을에 시심(詩心)을 절로 일으키는 ‘내 누님같이 생긴 꽃’ 국화가 왜 떠오르지 않을 것이며, 그 국화를 시로 꽃피운 미당 서정주 시인이 떠오르지 않을 것인가. 가을이면 찾아오는 고창의 ‘질마재 축제’가 기다려지는 까닭이다.

전북 부안면 선운리는 과연 가을이면 그 국화꽃으로 다시 피어나는 한 시인이 탄생할 만한 곳이다. 뒤로는 봉긋이 솟아오른 소요산이 포근히 마을 전체를 끌어안고, 저 앞으로는 왼쪽으로 곰소만이, 오른쪽으로 심원만 돌갯벌이 펼쳐져 있다. 그 곰소만과 심원만 돌갯벌 사이 미당의 무덤이 있는 송현리 안현마을 뒷동산은 온통 피어난 국화꽃으로 노랗고 하얗다. 그 선명한 색깔이 비현실적으로 여겨질 정도다.

이곳에서 미당은 어머니처럼 끌어안는 소요산에 묻혀 저 앞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만이 유혹하는 세상을 바라봤을 것이다. 미당의 생가와 유택, 문학관이 공존하는 이 특별한 장소에 서서 그 국화향 가득한 문향(文香)을 느껴보고, 그것이 그려내는 조촐한 자연의 소박한 아름다움과 우리네 삶의 한 자락을 그려보는 건 실로 특별한 체험일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미당의 눈과 동화되는 일일 테니 말이다. 

1998년 폐교된 선운분교를 개보수해 만들어진 ‘미당시문학관’은 벽면을 잔뜩 타고 오른 담쟁이 넝쿨의 정취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은다. 미당의 생가는 넉넉한 감나무가 금방이라도 “옛다!” 하고 감 하나 던져줄 듯 자라난 마당에 고졸하게 서 있다. 이 생가 옆 초가에 현재 살고 있는, 미당과 줄곧 같이 자라고 생활해온 동생 서정태 씨는 젊은 시절 미당과의 구수한 옛이야기를 그 깊게 팬 주름만으로도 충분히 들려준다. 질마재 축제는 물론 작고 조촐한 한 시골마을의 축제지만, 이 작은 공간을 가득 메우는 이 문학의 향기는 결코 적은 여운을 남기지 않는다. 딱히 미당이 아니더라도 문학과 그 문학이 담는 삶과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 그곳이 ‘질마재’다.

물론 ‘질마재골 국화향 속에서’라는 제목에서 묻어나듯 이 축제에서 미당을 떼놓고 얘기할 수는 없다. 질마재는 바로 이 시인의 바탕이 된 땅이고, 국화향이란 그렇게 탄생한 그의 문학이니 말이다. 물론 미당은 일제강점기 후반에 발표하게 된 친일 작품과 독재정권 지지와 찬양 문제로 비판을 받고 있고 그래서 이 축제도 한편으로는 역풍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역사는 한 가지로만 평가받을 수는 없는 일. 공이 있으면 과도 있게 마련이다. 이것을 온전히 다 드러내고 느낄 건 느끼고, 비판할 건 비판하는 것. 이것이 진정 후대가 역사를 제대로 보는 방법일 것이다. 그래서 미당시문화관에는 미당의 삶의 여운이 느껴지는 시들과 함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보여주는 이 친일의 흔적도 그대로 전시해 보여주고 있다.

과거는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현재이자 미래다. 질마재 축제는 미당을 상찬하려는 축제가 아니다. 이것은 한 시인의 탄생과 삶과 시련, 그리고 인간적 과오까지를 고스란히 다 보여주고 드러내려는 축제다. 그래서 그 차가운 무서리와 긴긴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나서 피어나는 꽃의 의미를 묻는 축제다. 축제는 때론 이렇게 소통되지 않는 현실을 연결해주는 한마당이 되기도 한다. 감동이나 공감이나 교감은 물론이고, 비판까지도 한마당으로 모아 한바탕 흥겨운 춤으로 풀어내는 것. 그것이 축제의 본질이 아니겠는가. 가을 국화꽃 향기 그득한 질마재에 가면 그 축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정덕현 여가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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