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전원생활, 전원주택도 ‘짝퉁’ 전성시대?
#은행 부장 A씨=은퇴에 대비해 강원도 동해안쪽에 전원생활용 땅을 물색해오던 A씨(49)는 최근 기존의 강남권 아파트를 전세 놓고 처가가 있는 인천시 계양구 계양산 자락에 새 둥지를 틀었다. A씨의 집은 정원을 갖춘 단독주택인 데다 주변에 텃밭을 일굴 수 있고 계양산 산책도 즐길 수 있어 비록 행정구역은 인천시이지만 전원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특히 A씨는 올 초 서울 신촌의 한 대학에 입학한 딸이 전철을 이용해 편리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대기업 임원 B씨(53)=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산행을 즐기는 B씨는 ‘열혈 전원파’이다. 산 좋고 물 좋은 지방 시골에서의 전원생활을 늘 꿈꾼다. 그래서 가끔 아내와 함께 전원주택용 땅을 찾아 현장답사에 나서기도 한다. 그런 그가 최근 성남시 판교신도시 내 단독주택지를 매입해 집을 짓고 있다. 도시 탈출은 뒤로 미루고 일단 아파트에서만 벗어나기로 한 것. 대신 그는 판교 단독주택을 옥상텃밭과 정원을 갖춘 전원형 주택으로 설계했다.

올 들어 아파트 시장은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반면, 단독주택은 거래가 늘고 신축이 활성화되는 등 상대적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실제로 올 1~8월 전국의 단독주택 거래량은 8만103건으로 지난해 대비 16.5% 증가했다. 또 같은 기간 LH공사에서 분양한 단독주택용지 판매량도 106만㎡(7879억 원)로 지난해와 견줘 면적은 60%, 금액은 40% 각각 급증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아파트 시대는 끝났다’는 성급한 진단마저 내놓고 있다.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대한민국 주거문화를 지배해온 아파트가 그리 쉽게 종언을 고할 리야 없겠지만, 기존의 아파트 중심의 주거문화가 조금씩 단독주택 쪽으로 옮겨가는 움직임이 감지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뭉뚱그려 놓은 통계보다는 오히려 A씨와 B씨의 사례에서 더욱 뚜렷하게 확인된다. A씨와 B씨는 소위 베이비부머 1세대(1955~1963년생)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고(은퇴 시기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다. 하지만 부의 상징인 강남권 아파트 대신 단독주택을 택했다. 자산관리 차원의 고려와 함께 새로운 주거형태, 즉 삶의 질을 선택한 것이다.

최근의 단독주택 인기현상은 이러한 주거문화의 질적 변화 움직임과 함께 임대수익형 부동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도심에서는 임대수익형 도시형생활주택을 짓기 위한 기존 단독주택의 거래가 늘어났고, 택지개발지구 내 단독주택지 역시 층고와 가구 수 제한이 완화됨에 따라 점포와 원룸 임대수익을 겨냥한 수요가 몰리면서 판매량과 신축이 활기를 띠고 있다.

여기에 A씨와 B씨처럼 평소 전원생활을 꿈꾸던 사람들이 차선책으로 전원형 단독주택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따라서 도시와 도심 근교, 수도권 택지지구 등지의 단독주택 인기 현상은 임대수익형 단독주택과 전원형 단독주택으로 나눠볼 수 있다. 필자는 전원형 단독주택을 ‘유사 전원주택’ ‘짝퉁 전원주택’이라고 부른다.

반면 비도시지역, 즉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 시골에서의 ‘진짜 전원주택(짝퉁이 아닌)’은 그 수요가 아직 위축되어 있다. 도시에서의 모든 것을 접고 귀농 또는 귀촌하기란 소득 및 자녀교육 문제 등 현실적인 제약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도시에 살면서 주말이면 시골 주말주택을 이용하는 ‘멀티 해비테이션’이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확산되고는 있지만, 최근 경제 불안감에 이마저도 위축된 상황이다.

결국 ‘로망’으로 불릴 만큼 모두가 소망하는 전원생활 이지만, 불안한 경제상황과 현실적인 여러 제약 속에 ‘진짜’보다는 ‘짝퉁’이 더욱 유행하고 있다. 꿈은 꾸지만 이룰 수 없는 현실의 벽 앞에서 대리만족을 통해 이를 충족하고자 하는 심리가 작용한 것.

이런 짝퉁 전원생활 유행은 단독주택 옥상에 텃밭을 조성하는 것을 넘어 심지어 아파트 베란다 텃밭까지 만들어냈다. 귀농과 귀촌 활성화는 국가정책이지만, 서울시 등 도시 지자체에서는 이 같은 짝퉁 심리에 편승해 오히려 베란다 텃밭, 옥상 텃밭 등 이른바 ‘도시농업’을 홍보하는데 열심이다. 어찌 보면 이는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한동안 거셌던 땅콩주택 열풍 또한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전원주택에 대한 갈망이 현실과 타협하면서 만들어낸 결과물(일종의 짝퉁 전원주택)이 아닐까?사실 전원주택을 지어봤거나, 전원생활을 해본 경험자라면 알겠지만 아담한 집을 짓고 조그만 정원과 텃밭을 조성하려고 해도 부지 면적이 1000㎡(300여 평)은 되어야 한다. 이 역시도 지상주차장에 컨테이너 창고라도 하나 들여놓으면 제대로 된 정원과 텃밭 만들기가 여의치 않다.

따라서 진짜 전원생활, 진짜 전원주택은 사실상 도시지역(우리나라는 전체 인구의 90% 이상이 도시지역에 모여 산다)이 아닌 지방의 시골이라야 가능한 셈이다. 첫째 조건인 청정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고, 땅 값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국토해양부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현 40~50대의 절반 정도가 “은퇴 후 전원생활을 희망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베이비부머 1세대(1955~1963년생 712만 명)와 2세대(1964~1972년생 743만 명)다. 무려 1455만 명에 달한다. 지난해부터 베이비부머 1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이들의 전원행도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발길은 ‘진짜’보다는 ‘짝퉁’쪽으로 더욱 향하고 있다. ‘진짜’는 결행하기 어렵지만, ‘짝퉁’은 이미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변형된 주거형태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 선택의 폭이 넓다. 또한 소득, 자녀교육문제 등의 해법 찾기가 수월하고 도시생활의 편의도 그대로 누릴 수 있다.

짝퉁 전원생활, 짝퉁 전원주택의 시대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동안은 진짜보다 더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짝퉁은 짝퉁일 뿐 진짜는 아니다. 결국 짝퉁을 통한 대리만족에 대한 환상이 깨질 때야 비로소 진짜 전원생활, 진짜 전원주택 시대가 열릴 것 같다.

(헤럴드경제 객원기자,전원&토지 칼럼리스트,cafe.naver.com/rmnews)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