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은 ‘21세기 판 페스트’다. 국제보건기구(WHO)는 최근 보고서에서 “심장병, 뇌졸중, 암, 당뇨병 등 만성질환으로 한 해 3500만명이 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전체 사망자에의 60%에 해당한다.
이처럼 인류의 보건 최대목표가 ‘전염병 퇴치’에서 ‘만성질환 관리’로 바뀌면서 질병치료에 있어서도 공격적이 아닌, 환자 개인의 상태를 고려한 보전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뉴욕대 의대 대니얼 오프리 교수는 20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의 칼럼을 통해 만성질환 관리에 있어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는 게 최고의 치료법이 될 수도 있다”(Doing Nothing Is the Best Medicine)고 주장했다.
의사들은 물론 환자들 중에도 검사수치에 이상이 발견되면 약물이나 수술 등의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떤 치료든 부작용의 위험은 상시 존재한다. 항생제 남용은 바이러스의 내성을 키웠고 불필요한 CT스캔 검사로 방사선에 과도하게 노출된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오프리 교수는 “전립선암 치료의 부작용으로 실금이나 발기부전이 생겼다면 수명이 늘어났다 한들 과연 삶의 질까지 높아졌다고 할 수 있겠는가”고 반문했다.
특히 인류가 당뇨, 고혈압 등 생활습관성 질병과 싸우고 있는 이때 검사수치만 보고 약물을 처방하는 것은 또 다른 잠재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프리 교수는 “현재 건강문제가 환자의 삶의 질을 크게 낮추고 있지 않다면 지켜보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이를 치료를 위한 ‘임상 관성’(clinical inertia)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지만 스탄틴 같은 콜리스테롤 강하제를 처방하지 않고 기다리거나 혈당이 높을 때 혈당 강하제를 바로 처방하지 않는 식이다.
최근 미 의사협회저널(JAMA)에도 치료적 임상 관성이 만성질환 환자에게 오히려 더 이익이 될 수도 있다는 논문이 실렸다. 논문은 당뇨, 고 콜레스테롤, 고혈압 등의 경우 혈당이나 혈압을 무리하게 낮추면 사망률이 높아진다는 임상실험 결과를 들면서 “일반적인 치료의 가이드라인이 숫자를 바탕으로 공격적인 치료 쪽으로 기울어진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개별 환자에 이를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을 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응급한 처치가 필요한 경우는 예외다. 다만 약물이나 침습적 치료를 처방할 때 환자 개인의 상태를 고려해 심사숙고 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이다. 오프리 교수는 “의사가 심사숙고 한다고 보험회사가 배상하는 것도 아니고 치료실적이 느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그저 지켜보면서 생활관리를 하는 식으로 상태가 개선된 환자가 많다는 사실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밝혔다. 만성질환 관리에 있어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적용된다는 주장은 유난히 수술과 약물을 선호하는 한국의 환자들이 되새겨볼 만하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