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간 봉림대군(효종)을 도왔던 우담 채득기가 경천대(擎天臺)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불렀다는 ‘봉산곡(鳳山曲)’의 한 구절이다.
산은 강물을 품고, 강물은 산자락의 품에서 한도 넋도 흘려보낸 400년. 새로운 객(客)을 맞은 경천대는 그때나 지금이나 하늘이 빚은 절경이다. 쪽빛 하늘과 쪽빛 강물에 가슴이 애절하다.
강원도 태백 황지못에서 발원해 부산까지 한반도 남쪽을 굽어 흐른 낙동강 1300리. 그 중 낙동강 최고 절경이 바로 상주 경천대다. 깊어가는 가을 주말, 경북 상주의 경천대에 올랐다.
▶용을 닮은 낙동강이 굽이굽이 경천대를 휘감다= 경천대를 만나자니 마음부터 들뜬다. 상주 IC부터 경천대에 이르는 6km 남짓한 길은 높디높은 가을 하늘 아래 온천지가 코스모스밭이다. 상주의 가을이 그래서 더 멋스럽다.
경천대 전망대로 통하는 울창한 소나무 숲길로 발길을 옮겼더니 돌탑길이 보인다.
꼬마부터 80노인까지 수많은 이들의 소원이 쌓인 돌탑길이 300m쯤 이어진다. 주변이 절경이니 세속이 아닌 듯 넋도 혼도 빼앗겼다. 나무로 만든 3층 전망대에 오르면 깎아지른 기암 절벽에 듬성듬성 자라난 노송이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그 밑을 흐르는 강이 만나 탄성이 절로 나는 절경이다.
전망대를 나온 발길은 새 나오는 아쉬움에 경청대로 향한다. 경천대는 임진왜란 때 왜군과 100여 차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육지의 이순신’으로 불린 정기룡 장군이 용마와 함께 수련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현재는 그때 장군이 바위를 파서 만들었다는 말먹이 통이 긴 세월 풍파를 견디고 홀로 남아 있다.
아찔한 절벽 넘어 멀리 강변에는 낙동강의 금빛 모래사장, 사벌면의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벌면은 3세기 후반 신라에 복속된 진한의 소국인 사벌왕국의 왕릉 관광지가 있다. 상주는 고령가야의 도읍, 신라 때 전국 9주, 고려때 전국 8목의 하나였고 조선시대에는 관찰사가 상주목사를 겸한 한반도 남쪽의 역사 고도(古都)다. 유수한 역사를 말없이 지켜본 탓일까 경천대 및 낙동강은 햇볕에 반사된 물빛이 새색시 마냥 수줍어도 보이지만 어딘가 굳센 힘이 넘쳐난다.
언뜻 봐선 휘도는 모습이 승천을 앞둔 용 한 마리와도 닮았다.
▶무우정ㆍ드라마 ‘상도’ 세트장= 경천대 옆엔 소박하지만 역사가 서린 무우정이란 정자가 있다.
조선 인조 15년(1637) 우담 채득기가 은거하며 학문을 닦던 장소다. 우담은 소현세자ㆍ봉림대군을 도와 청나라에 갔던 인물.
무우정에서 강변 오솔길을 따라 가니 절벽 위에 드라마 ‘상도’ 세트장과 자전거 박물관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자전거박물관은 전국 자전거 보유율 1위인 상주시가 자전거 도시임을 대변해 주는 상징물이다. 박물관에 들어가니 초창기에 발명된 자전거부터 나무로 만든 자전거, 이층자전거, 물 위를 달릴 수 있는 수륙양용자전거 등 희귀한 자전거가 눈길을 잡아 끌었다.
▶역사가 숨쉬는 천년사찰 남장사= 자전거박물관 뒤쪽의 석장동 곶감마을을 지나니 경북 8대 비경의 천년 고찰 남장사(南長寺) 입구 표지판이 나왔다.
입구까지는 걸어서 5분 남짓. 가는 길엔 수십년 수백년은 족히 넘었을 거목들이 키재기 경쟁으로 하늘을 가려 만든 나무터널이 길동무를 해줬다.
남장사는 신라시대인 832년(흥덕왕 5년) 진감국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귀국해 장백사(長栢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입구엔 성난 표정에 소박함과 천진스러움이 엿보이는 석장승, 목수가 자신의 솜씨를 한껏 발휘한 일주문이 천년의 미소로 유혹한다. 그 맛이 화려하기보다 오래되고 낡은 느낌이지만 정이 가는 고즈넉함, 당당하고 위풍스러움이 가득하다.
절의 중심건물인 보광전 앞엔 파란 잎의 커다란 야자나무 두 그루가 소박하게 손님을 맞았다.
보광전엔 보물 제922호 목각탱화가 있다. 주불 뒤에 있는 후불탱화를 그림으로 그리지 않고 나무로 조각한 것이 특색이다. 또 조선 철불상의 귀중한 예로 평가받고 있는 보물 990호 철불좌상도 따뜻한 미소로 가을 여행객을 맞는다.
심형준 기자/cerju@heraldcorp.com
사진/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