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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노하라!
키는 소득에 비례한다. 평균 키는 170cm. 소득이 많으면 키가 크고 벌이가 신통치 않으면 난쟁이가 된다. 모든 이들은 키 순서, 즉 소득의 순서대로 1시간 내에 이 퍼레이드를 통과해야 한다. 가장행렬이 시작되지만 등장인물은 나타나지 않는다. 파산한 사업가나 빚쟁이는 키가 없고 땅속에 거꾸로 파묻혀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지만 ‘소인국’을 방불케 하는 난쟁이들만 계속 나온다. 시간이 절반이 지났는데도 평균 키인 170cm인 사람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48분, 마침내 170cm의 인물이 등장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후론 거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해 59분이 지나면 10m가 넘는 의사나 변호사가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등장인물, 석유왕 폴 케티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cm로 키를 잴 수 없고 마일로 키를 재야 하는데, 너무 커서 얼굴이 구름을 뚫고 지나가는데 1000m가 훌쩍 넘는다.
네덜란드 경제학자 얀 펜이 ‘소득분배’를 통해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이 광경은 난쟁이들의 행렬이다. 소득대로 키를 맞추면 47분까지는 평균 키 이하다. 난쟁이들의 눈에 거인은 존경보다는 탐욕의 상징이다. 가장행렬은 모델이 영국이지만 한국도 이 같은 가장행렬을 펼친다면 크게 다르지 않다.
전 세계가 분노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심장, 미국에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게 그 상징이다. 월가라는 ‘탐욕의 거인’을 놓고 ‘소인국’사람들의 분노가 강해지고 거칠어지고 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시작한 시위는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고 있다. 분노는 대서양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일로다.
시위의 중심에는 ‘작은 정부-큰 시장’이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거부가 바탕에 놓여 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상징되는 2008년 금융위기로 타격을 입었던 신자유주의는 2011년 유로존 위기로 파산 상태다.
시장만능주의로 ‘그들만의 리그’가 불러온 소득불평등,중산층 몰락, 탐욕과 부패에 대한 저항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이 분노의 바탕에는 아흔이 넘은 프랑스 레지스탕스가 있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출간된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라는 40쪽도 안 되는 작은 책은 200만부가 넘게 팔리면서 분노의 원천이 되고 있다. ‘대량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에 대해 94살 레지스탕스는 분노하고 있다.
‘지금은 분노하고 저항할 때’라는 노투사의 외침은 한국으로 오고 있다. ‘여의도를 점령하라’라는 한국판 월가 시위도 눈앞이다. 소득불평등이나 청년실업처럼 한국도 분노의 재료들이 축적되고 있다. ‘안철수 신드롬’ 역시 또 다른 분노의 상징으로 읽을 대목이다. 전 세계의 분노가 한국으로 상륙하면 인화력은 상상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촛불시위, 조금 더 길게 보면 1987년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어디로 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 외침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으면 우리의 미래도 없을 수 있다. 분노의 무시는 더 큰 분노를 가져올 것이다. 분노하라! 이 외침은 더욱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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