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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법대 82학번 전성시대
나경원·원희룡·조해진·조국·김난도 등 왕성한 활동 각계 막강한 영향력…남다른 연대의식·자존감으로 뭉쳐
본고사 폐지·졸업정원제

서울대학교 미달 속출

1, 2, 3지망제 도입 수재 몰려

졸업생 수만 280명


동기생 56%는 법조인

경제계 22%·정계 14%·학계 8%

다양한 분야 곳곳서 맹활약


386 초기세대 자부심

“사회발전에 기여해야”

책임 의식 유난히 강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82학번이 시샘아닌 시샘을 받고 있다.

한 칠판에서 수업받은 동기모임이라 하기엔 졸업생들의 면면이 쟁쟁하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와 원희룡ㆍ조해진 의원은 진작부터 당 내 ‘82학번 법대 트리오’로 유명세를 탔다. 최근 학계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강남 좌파’ 조국 서울대 교수와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 서울대 교수, TV토론 진행자로 유명한 왕상한 서강대 교수가 같은 학과, 같은 학번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김상헌 NHN 사장과 1980~90년대 ‘주사파의 대부’로 불렸던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중동 특파원 출신인 용태용 KBS 기자도 82학번 배지를 달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또 중앙부처에서 잘 나가고 있는 기획재정부의 최상목 경제정책국장과 행정안전부의 박수영 경기도기획조정실장도 82학번 한솥밥을 먹은 동기생이다.

압축 성장과 엘리트주의로 대변되는 한국 현대사에서 서울대 법대가 최고의 학부로 인재를 양산해왔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특정학번이 이처럼 무한 인재풀을 자랑하며 한국사회의 핵심세력으로 부상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82학번은 본고사 폐지와 졸업 정원제의 혜택을 입은 실질적인 첫 학번이다.

대기업 간부로 있는 한 졸업생은 “지난 1981년 갑작스런 입학제도 변경(본고사 폐지 및 졸업정원제)으로 서울대학교에 대규모 미달사태가 발생했고, 학교 측이 이를 방지하기 위해 82학번부터 1, 2, 3지망제를 도입해 성적이 잘 나오면 법대, 아니면 다른 과 하는 식으로 성적 줄세우기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1지망으로는 대부분 서울대 법대를 지원해놓고, 성적이 미달하면 차선으로 2지망, 3지망 학과를 선택하는 식이었다. 


이러다보니 이해 법대 입학생들은 인문계 수험성적 최상위자들이 줄지어 들어왔고, 입학 정원도 예년의 배 가까운 360명, 졸업생 수만 280명에 달했다. 입학생 중 여학생이 두자릿수(11명)를 기록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다.

앞선 학번들에 비해 세를 과시할 수 있는 절대 인원 자체가 풍부했던 셈이다.

그렇다고 해도 법대 82학번이 법조인 외에 정치인과 저명 교수, 이론가, 언론인, 공직자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이름값을 하는 데는 물량 공세 이상의 무엇이 있지 않을까.

82학번 동기생들 중 절반 이상(56%)은 여전히 법조인의 길을 걷고 있지만, 무려 22%가 경제계에, 8%는 학계, 14%는 정계와 행정부 등에 골고루 포진해 있다.

변호사로 활동하는 또 다른 졸업생은 “당시만 해도 적성과 관계없이 성적 좋은 친구들이 몰려왔다”면서 “80년대 초의 암울한 시대상과 맞물려 동기들은 법학 외에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뒀고 졸업 후에 진로가 다양해진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군부에 기반한 권위주의 권력체제가 질풍노도의 젊은 수재들을 고민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한 불면의 밤들이 숱한 외도자(?)들을 배출하게 된 직ㆍ간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송상현 교수 등 당시 82학번을 가르쳤던 선생님들도 학생들의 다양한 진로 선택에 용기를 줬다고 한다.

현재 법학과 무관한 소비자학과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난도 교수도 학생시절 판ㆍ검사직에 매력을 못느끼다가 송 교수로부터 행정학을 공부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듣고 진로를 바꾼 케이스다. 김상헌 NHN 사장은 판사 생활 3년 만에 기업체로 옮긴 후 법무팀장을 하다가 NHN에 경영고문 자격으로 합류, 2009년에 사장이 됐다.

졸업 후 진로는 다양하지만 이들은 1년에 한 번 이상 모여 우애를 다진다고 한다.

모임 회장은 다수 구성원인 법조인 중에서 돌아가면서 맡고 있다.

최상목 국장은 “동기 중에는 고시 공부하는 친구도 있었고, (사회) 운동을 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적어도 그때는 시대를 공유하는 연대감으로 뭉쳐 서로간에 이질감이 적었다”면서 “82학번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를 굳이 꼽자면 이런 다양성과 연대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 82학번에게는 시대의 꼬리표인 ‘386세대’라는 말이 늘 따라붙는다.

4ㆍ19혁명이 있던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 ‘서울의 봄’ 이후 대학을 다녔고, 사회주의가 기울기 시작한 90년대에 30대의 나이에 접어든 사람들, 그 중에 비교적 앞줄에 선 이들이 82학번 동기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386은 더 이상 이념세대를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과거의 부채와 현재의 열정을 디딤돌로 미래를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더 강한 것처럼 보였다.

중앙공무원이 된 졸업생은 “386세대는 변화를 갈망했고, 그 변화를 눈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전 유신세대 선배들이나 이후 후배들과는 다르다”면서 “사회에 대해 시니컬한 비판적 시각도 없진 않지만 우리 대다수는 미래 지향적으로 사회발전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법대 82학번 동기들에게는 이제 후배가 없다. 로스쿨 체제로의 전환으로 법대 학사 과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최 국장은 “섭섭한 마음 반, 기대하는 마음 반”이라며 “중요한 것은 로스쿨을 나온 사람들이 어떤 자질을 함양해 사회에 기여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양춘병 기자@madamr123>
/ 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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