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봉구에서 철물점을 하고 있는 A씨는 지난 4월 직장가입자들이 건강보험료 정산으로 폭탄을 맞았다는 뉴스에 귀가 쫑긋했다. 지역가입자인 자신도 건강보험료가 20% 가까이 인상한 것을 확인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장사가 잘 안돼 어려움을 겪던 그는 그 원인을 건강보험공단 지역본부에 물어봤고 직장가입자는 임금이나 성과급이 증가한 데 따른 것이지만, 지역가입자는 지난해 전세가격이 급증하면서 보험료도 올랐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A씨는 “임금이나 성과금이 올라 보험료를 더 내는 직장가입자는 그나마 나은 상황”이라며, “지역가입자는 전세금 인상에 따른 대출 부담에다 건강보험료 부담까지 겹치면서 더욱 생활이 어려워졌다”고 하소연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추미애 민주당 의원이 서울 지역가입자들의 건강보험료를 분석한 결과 재산 수준이 다른 지역별 건강보험료 차이가 크게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소득이나 재산 보유 수준이 높지 않은 지역의 경우 전세 가격 인상으로 인한 건강보험료 인상폭이 크게 나타난 반면, 전세값 인상 금액이 큰 지역의 경우 건보료 인상폭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나는 등 빈부차에 따른 건보료 부담에 공정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도봉구와 영등포구의 전ㆍ월세 가격 증가율은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각각 10위와 11위였지만 보험료 증가율은 나란히 1, 2위를 기록했다. 반면 용산구는 25개 구 가운데 전월세 가격 증가율이 가장 높았지만, 보험료 증가율은 11위로 중간 수준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현행 보험료 부과점수의 산정방법이 고액 재산가의 재산 증가에 대한 보험료 적용 밴드는 금액이 크게 적용되는 반면, 재산이 적은 경우 보험료 적용이 세분화되면서 보험료 변동이 크게 나타나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실제로 최소 330만원에서 최대 100억원까지 50등급으로 구분된 재산등급 중 재산가액이 낮은 등급은 1~2000만원 단위로 촘촘히 설계된 반면, 재산가액이 높은 등급은 구간 폭이 최대 10억원에 달해 고액 재산가의 등급 상승이 쉽지 않다.
이런 까닭에 고액재산가의 전셋값이 수억원 올라 기준등급이 한 단계 상승하더라도 수억원의 재산 증가액에 비해 보험료 상승액은 매우 미미해 소득이 낮은 사람이 더 높은 세부담을 지는 ‘역진성’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
가장 높은 등급인 49등급(90억원~100억원)에서 50등급(100억원 초과)으로 등급이 상승한 경우 보험료 추가 부담분은 7608원이다. 그러나 이는 1등급(333만원~1500만원)에서 2등급(1500만원~3000만원)으로 상승했을때 추가로 내는 보험료(3639원)의 2배 수준에 불과하다. 재산가액 변동은 10억원 가까이 차이가 나지만, 이에 따른 보험료 인상분은 고작 3000원 정도에 그치는 셈이다.
김태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대 사회정책국 국장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전세가격 문제를 건강보험료 산정 시 올바르게 반영하지 못한다면 이는 정부의 직무유기”라며, “비합리적인 제도는 국민을 불신을 고착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높은 등급의 건보료 부담을 늘릴 수도 있겠지만, 전셋값 외 소득이 없는 지역가입자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지역가입자의소득파악률을 높여 건보료 산정 시 소득의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도제 기자/pdj24@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