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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남’ 김영철, ‘수양 이상의 수양’
단 2회만을 남겨놓은 KBS ‘공주의 남자’는 멜로사극으로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 승유(박시후 분)와 세령(문채원 분)의 가혹한 사랑은 어떻게 될 것인지가 남아 있다. 하지만 이들의 로맨스가 비통하고 절절하게 된 것은 당시 상황이 만든 것이다. 그런 상황을 만든 장본인은 수양대군, 세조다.

이들의 로맨스를 힘들게 하는 세령의 부친 수양대군역을 맡은 김영철(58)의 연기는 단연 압권이다.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다. 눈빛은 무섭다. 최고 권력, 야망을 향해 질주하는 그의 연기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다. ‘공주의 남자’ 최지영 CP는 “수양이 살아 돌아와도 김영철 씨만큼은 못할 것이다. 수양 이상의 수양을 보여주고 있다”고 김영철의 연기를 극찬했다. 김영철의 말 한 마디, 한 동작이 그의 딸 세령과 김종서의 아들 간 사랑의 긴장도를 높였다가 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나자마자 기자가 던진 질문은 “왜 이렇게 무서워요?”였다.

“다들 세조를 폭군으로 생각하는데 그렇게 그리고 싶지 않았다. 연출가와 작가 쪽에서 강한 걸 원하니까 단적으로 그렇게 가고 있다. 만약 수양이 주인공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면을 부각시키고 싶었다.” 



▶선 굵은 냉철한 카리스마

수양의 권력욕은 섬뜩할 정도다. 욕망 실현을 위해서는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 그것이 형제라도 과감하게 제거하는 교활함과 잔인함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주도면밀함까지 보이고 있어 조선의 마키아벨리로 불린다. 태조 이방원도 동복형제를 죽이진 않았다.

“자식까지도 죽일 수 있는, 비정한 사람인 것 같다. 거사를 일으켜 승자가 된 사람이 역사에서 그렇게 비칠 때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 이 정도로도 미화된 것이 아닐까. 정말 무섭다.”

하지만 김영철은 수양의 아픔과 고민도 함께 그려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수양은 남을 믿지 못한다, 권람과 한명회 등 수족을 옥에 가뒀다 풀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면서 “김종서를 죽이고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는 과정은 교활 그 자체이지만, 권력욕만 있는 건 아니다. 조선의 정치를 멋있게 해보고 싶었던 목표도 있었다. 이를 위해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과는 피를 봐야 했다”고 말했다. 드라마가 4회 정도만 더 진행된다면 수양의 입장을 더 보여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게 안 돼 아쉽다는 설명이다. 그럼 세조에게 좋은 점은 없었을까?


김영철은 “세조는 첩이 없었다. 아내 외 여자 문제는 깨끗했다. 아마 여자를 믿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대단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세조가 사악하게 비치는 결정적 계기는 한명회를 만나면서라고 했다. 시장바닥에서 장돌뱅이로 도적질을 일삼던 한명회와 죽이 잘 맞아 더욱 교활해져 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세조도 자식에게만은 어떡하질 못한다. 세령의 반발에 딸을 노예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강경하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눈물을 훔치는 ‘딸바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회한도 많았을 것이다. 김종서는 북진 개척에 큰 공을 세운 신하다. 권력을 가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김종서를 죽였는데, 그의 아들과 내 딸의 사랑이 겹쳐져 더 큰 회한이 생겼을 것이다.”

김영철은 “수양이 왕으로 취임하고 신숙주, 권람, 한명회와 술을 마시면서 ‘내가 뭘 얻으려고 많은 사람을 죽이고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모니터할 때 이 장면을 봤는데 여운이 남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김영철은 “수양과 단종 이야기는 그간 사극에서 많이 다룬 소재라 새로울 게 없다”면서 “하지만 수양의 딸과 수양이 죽인 김종서의 아들 사이의 사랑이 쏙 들어왔다. 수양과 딸과의 관계에서 오는 아픔은 ‘공주의 남자’의 좋은 관전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나는 강한 역할보다 야리야리한 역할을 하고 싶다

김영철은 ‘궁예’역이 인상적이었던 드라마 ‘태조 왕건’ ‘야인시대’ ‘대왕세종’, 영화 ‘달콤한 인생’ 등에서 냉철하고 강렬한 카리스마 연기를 주로 펼쳐 선이 굵은 배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이리스’의 ‘벽산’역처럼 착한 사람처럼 보였는데 나쁜 사람으로 변해도 잘 어울리고, ‘인생은 아름다워’의 마음씨 좋은 제주 펜션지기 아저씨 ‘양병태’역도 잘 어울린다. 이야기가 이쯤에 이르자 김영철은 초기에는 주로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 같은 토속적인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다고 했다. 어쨌든 이처럼 강한 카리스마가 어디서 나올지 궁금했다. 낮은 목소리일까?


김영철은 “나에 대한 믿음 아닐까. 여기에 순발력이 잘 버무려지면 좋을 것 같고”라고 말하고 이내 자신의 연기관을 피력했다. “배우는 자기관리가 중요하다. 낙점을 받는 직업이어서 계획대로 갈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많이 고른다. 그래서 안 좋은 소리도 많이 듣는다. 사극 제의가 또 왔지만 거절했다.”

연기 인생 30년이 된 김영철은 “연기 기술이 있어야 하겠지만 연기는 가슴이다, 평정심이랄까, 똑같은 마음”이라면서 “젊었을 때는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했고, 이제 내 이름이 만들어지니까 돈보다는 일에 대한 믿음이 중요해졌다”고 연기론을 펼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김영철은 “나에게 굵은 역할만 주는데 야리야리한 역할도 맡고 싶다”면서 “나는 완벽하지 못하다. 오히려 바보 같다. 완벽하게 보이려고 그렇게 된 것이다. 다음 연기는 멜로가 좋다”고 말했다.

서병기 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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