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작품성·저렴한 관람료·소극장만의 매력‘문화회식’단골코스로…국내 창작뮤지컬, 라이선스 대작 못잖은 롱런 새 트렌드로
‘김종욱 찾기’ 5년째 장기공연2130회 돌파·41만 관객동원
관객과의 친밀한 스킨십
아기자기한 마케팅 눈길
시대감각·취향 변화 따라
작품 가다듬어야 장수 성공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에서는 10년 넘게 오픈런(Open Runㆍ끝나는 날짜를 지정하지 않는 공연) 중인 장기 공연들이 수두룩하다.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등이 20년 넘게 매일 공연되고, ‘라이온 킹’ ‘위저드’ 등도 10년 넘게 오픈런 중인 인기 공연이다.
한국 공연계에도 (오픈런은 아니어도)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장기 흥행작이 점차 늘고 있다. 작품을 수입해서 한시적으로 무대에 올리는 라이선스 뮤지컬 대신, 순수 창작 뮤지컬이 탄탄한 인기를 얻고 있는 것. 대표적인 창작 뮤지컬 ‘김종욱 찾기’를 비롯해 중ㆍ고교 교과서에 등재될 예정인 뮤지컬 ‘빨래’, 수많은 뮤지컬 스타를 배출한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이하 오! 당신)’ 등이 장기 흥행신화를 쓰고 있다.
최근에는 ‘늑대의 유혹’ ‘스트릿 라이프’ ‘셜록 홈즈’ 등 다양한 장르의 탄탄한 창작 뮤지컬이 속속 등장하며 장기 공연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오랜 기간 착실히 내공을 쌓아온 국산 창작 뮤지컬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소극장 뮤지컬의 뜨거운 인기, 양질의 발전=장기 공연을 이어가는 작품 대다수는 소극장 중심의 창작 뮤지컬이다. 2006년 초연된 소극장 창작 뮤지컬 ‘김종욱 찾기’는 초연 5년 만에 매출 100억원(지난 6월 기준)을 돌파했다. 시즌 4까지 2130회 공연을 하며 41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지난 5년간 평균 객석 점유율만 83%에 달한다.
이달 초 10차 공연을 시작한 뮤지컬 ‘빨래’는 내년 중ㆍ고교 교과서에 대본 중 일부가 등재되기로 하면서 매진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관객 구성은 남녀노소를 아우르며, 최근에는 중ㆍ고등학교 교사들의 단체 관람도 이어지고 있다. 누적 관객만 30만명(9월 기준)을 돌파했다. 창작 뮤지컬 ‘오! 당신’도 오는 30일 2000회를 맞는다. 2005년 12월 초연된 소극장 뮤지컬로, 현재 15차 공연 중이다. 지난 8월 말 기준 약 21만명의 관객이 공연을 봤다.
2009년 초연된 창작 뮤지컬 ‘스페셜 레터’도 시즌 3를 걸고 순항 중이다. 군대 이야기를 코믹하게 버무려 관객몰이 중인 이 작품은 애초 12월 31일까지 공연 예정이었으나, 예상보다 뜨거운 반응에 오픈런을 내걸었다.
국내 순수 창작 뮤지컬이 대형 라이선스 작품 못지않은 장기 흥행 돌풍을 이어가며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사진은 ‘김종욱 찾기’의 한 장면. |
▶저렴한 가격+‘반짝반짝’ 아이디어 마케팅=10만원을 훌쩍 넘는 대작 뮤지컬이 부담스러운 관객들에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성인 1인 기준, 3만~4만원대)이 큰 매력이다. 100~200석 규모의 아담한 극장에서 극을 접할 수 있어 나들이 코스로 인기다. 직장인 사이에선 ‘문화 회식 코스’로 자리 잡은 지 오래. 초등학교 교사 범기옥(42ㆍ서울 강남구) 씨는 “회식문화가 많이 바뀌었다. 삼삼오오 모여 상대적으로 저렴한 소극장 뮤지컬을 보러 가는 게 새로운 회식 트렌드”라고 전했다.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의 틀을 깬, 아기자기한 마케팅과 따뜻한 스킨십도 창작 뮤지컬의 매력이다.
‘빨래’는 객석 뒤편에서 배우들이 등ㆍ퇴장하고, 중간 중간 관객들과 호흡하는 장면이 많은, 살가운 작품이다. 극 중 서점 신에서는 작가 사인회를 열어, 관객들이 직접 배우 사인을 받고 사진 찍을 기회도 있다. 이 밖에도 극 중 주인공 나영의 직장인 ‘명랑서점’은 현실 공간에도 탄생했다. 제작사 명랑씨어터수박 측은 관객들로부터 책을 기증받아 아동복지센터나 사회복지관 등에 명랑문고를 오픈, 현재 7호점까지 탄생했다.
‘김종욱 찾기’는 배우들의 숨은 ‘끼’와 개인기를 보여주는 ‘훈남파티’를 시즌별로 진행 중이다. 팬들과 배우들이 만나는 일종의 팬미팅으로, 2007년 첫선을 보인 후 정기 행사가 됐다.
‘스페셜레터’는 군대 인기 간식인 초코파이를 가져오는 관객에게 35%의 할인 혜택을 준다. 또 공연계 최초로 마니아 관객을 위해 일종의 쿠폰인 ‘면회증’ 제도를 도입했다. 1회 1인 유료 관객에게 도장을 찍어주며, 도장을 두 번 찍으면 50% 할인가를 제공한다.
▶배우도 창작 뮤지컬 매력에 푹~ 연어처럼 회귀 =배우들도 소극장 뮤지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소극장 무대에서 데뷔해 인지도가 상승하면 규모 있는 작품으로 옮겨갔던 배우들도 최근에는 소극장, 대극장 가리지 않고 참여하는 분위기다.
얼마 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에 네이슨으로 출연한 배우 이율은 2008년 출연했던 ‘김종욱 찾기’ 시즌 5로 돌아온다. 오는 10월 말부터 합류하는 이율은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소극장 무대의 매력으로 “관객들과 눈빛을 주고받으며 연기할 수 있는 다정다감한 분위기다. 한편으론 관객들과 가까이 있기 때문에 작은 실수도 간과해서는 안 되고 긴장해야 한다. 배우로서 많이 배울 수 있는 무대”라고 설명했다.
▶장기 흥행 노하우, 끊임없이 갈고 다듬어=일단 만들어진 작품이 장기 흥행을 이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해마다 대중의 취향과 트렌드가 변화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새로운 작품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오! 당신’과 ‘김종욱 찾기’의 원작자인 장유정 연출은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수명이 긴 소스(source)를 발굴하는 것, 그리고 작품을 계속 갈고 다듬는 것이 장기 흥행의 노하우”라고 설명했다. ‘오! 당신’의 2005년 1차 공연부터 2011년 15차 공연까지 단 한번도 빠짐 없이 작품을 맡아온 장 연출은 “시대가 바뀌고 대중의 취향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만큼, 작품도 감각에 뒤떨어지지 않게 꾸준히 업그레이드한다”고 했다. 뮤지컬 음악을 교체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오! 당신’은 5곡을 교체했고 안무를 바꿨으며 MR 작업도 새로 하는 등 꾸준히 재정비를 해왔다.
뮤지컬 ‘빨래’도 마찬가지다. 명랑씨어터수박의 이지호 대표 겸 프로듀서는 “이야기가 살짝 올드한 느낌이 있어 2012년 대대적으로 대본을 수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