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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자는 스타일이다, 아니 미학이다"
유럽을 풍미했던 르네상스가 막을 내려가던 16세기까지만 해도 의자는 존엄과 위엄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권력의 표상이었다. 평범한 민간인(?)은 감히 의자에 몸을 맡길 수 없었다. 오늘날 세계 정치 사회및 산업계에서 회장을 ‘체어맨’(Chairman)이라 부르고, 중국에서도 최고권력자를 ‘주석’(主席)이라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의자, 스타일의 총아= 파워의 상징이었던 의자가 ‘만인을 위한 것’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프랑스 대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자유 평등 인권사상이 들불처럼 퍼져가며 의자는 일반 시민에게까지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19세기 이후 모더니즘이 세상을 풍미하면서 의자는 기능 뿐 아니라 개인의 취미와 미감을 보태 ‘스타일의 총아’가 되기 시작했다.

의자의 매력에 푹 빠져 ‘의자’(The Chair)라는 책을 쓴 건축가 갤런 크렌츠는 “의자는 우리 신체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자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요, 문화예술사적 산물”이라며 “매우 미시적인 대상이지만 거시적인 존재”라고 정의했다.

이렇듯 시대를 비추는 아이콘인 의자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시대별 대표선수급(?) 의자들’을 통해 살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청주시가 내덕동 옛 청주연초제조창에서 펼치고 있는 ‘2011청주국제공예디자인비엔날레’(~10월30일)는 특별전으로 인간 삶의 필수품인 ‘의자’를 흥미롭게 조명한 ‘의자, 걷다’전을 꾸몄다.

’유용지물’이란 주제 아래 삶과 예술, 일상과 공예의 함수관계를 살핀 이번 비엔날레는 공예디자인의 실천적 도구로써 의자의 역사성과 미학을 살펴보는 특별전을 기획한 것. 전시에는 ’현대 예술의자의 개척자’ 매킨토시의 의자를 필두로 현대 디자이너의 작품까지 145여 작가의 의자 총 433점이 출품됐다. 지금껏 국내에서 의자 전시에는 간헐적으로 열리긴 했으나 시대를 대표하는 400여점의 의자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

정준모 청주공예비엔날레 총감독은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의자, 저명인사들의 의자, 새로운 시대정신에 맞는 의자들이 모두 나와 심미성에 실용성, 공학적 측면까지 고려해야 하는 의자의 묘미를 두루 만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의자에도 간판스타가 있다?= ’의자 걷다’전에 출품된 433점의 의자 중 오늘날 ‘근현대 의자사(史)’에 남을 만한 간판스타를 알아두면 훗날 내 공간을 위해 의자를 선택할 때 매우 유용하다. 이들 대표 디자인은 오늘날 끝없이 변주되며 대량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첫번째가 19세기 일상생활용 의자의 출현을 알린 영국의 시인이자 수공예작가 윌리엄 모리스(1834~96)의 ‘별장용 의자’다. 1870년대초 모리스는 자신의 별장에서 쓰기 위해 독특한 의자를 제작했다. 모리스의 뒤를 이어 영국의 천재 건축가 찰스 레니 매킨토시(1868~1928)가 등장했다. 매킨토시는 물푸레나무로 등받이를 수직으로 곧게 뻗게 한 ‘사다리 등받이 의자’를 선보였다. 당시에는 ‘도대체 의자 등받이가 저렇게 높을 필요가 있느냐’는 비난이 거셌지만 매킨토시의 이 의자는 ’현대 예술의자’의 전범으로 꼽히며 미술교과서를 장식하고 있다. 매킨토시는 작은 티룸을 위해 곡선 모양의 등받이 의자를 디자인하는 등 여러 걸출한 의자 디자인을 남겼다.

매킨토시의 디자인은 빈의 분리파와 프랑스 아르누보에 영향을 주며 급속도로 발전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예술적 측면에 경도된 의자에 반기를 든 독일의 바우하우스, 네덜란드의 데 스틸 그룹은 의자 본연에 충실하기 위해 장식을 배제하고, 모더니즘 미학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스 반 데어 로에(1886 ~1969)의 ‘바르셀로나 의자’는 군더더기 없는 명쾌한 디자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화가 몬드리안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몬드리안 의자’로 유명한 리트벨트(1888~1964)의 ‘지그재그 의자’는 의자의 면과 면, 선과 선을 명확하게 분할한 것으로 유명하다.

덴마크 가구 디자인의 명장인 아르네 야콥센(1902~71)의 ‘개미 의자’는 오늘날 아마도 가장 많이 복제되는 의자일 것이다. 개미 허리처럼 연결 부분은 잘록하게 처리해 무척 귀엽다. 


20세기 중반 이래 강철관과 섬유유리, 플라스틱이 도입되며 의자 디자인은 급진전됐다. 마르셀 브로이어(1902~81)의 ‘바실리 체어’는 처음으로 강철판을 사용한 의자로 요즘에도 인기가 무척 높다. ’아 저 의자!’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명(名) 디자인이다.

부부 디자이너인 찰스&레이 임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이 섬유유리로 제작한 ‘라 셰즈’(La Chaise)는 마치 한 점의 조각 같다. 얇은 목재를 여러 겹 붙여 곡선의 느낌을 살린 LCW시리즈도 유명하다. 


베르너 판톤(1926~98)의 ‘1959년작 판톤 체어’ 또한 오늘날 끊임없이 카피되는 디자인이다. 당시로선 혁신적 신소재였던 플라스틱을 통째로 구부려 곡선을 살린 이 의자는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이 멋스럽다. 최근에는 필립 스탁(1949~), 론 아라드(1951~), 제스퍼 모리슨(1959~)이 등장해 의자를 더욱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국내에선 의자의 디자인 개념은 미흡했다. 책상을 사면 덤으로 끼워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의자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멋을 아는 이들의 쇼핑리스트에 의자는 이제 ‘일상의 예술’로 추가되고 있다. 


<사진제공-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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