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은행그룹의 거물 로비스트 박태규(71)씨가 자진 귀국하면서 검찰 수사에 탄력이 붙어 박씨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어왔을 정ㆍ관계 인사들이 적잖이 불안에 떨게 됐다.
대검 중수부가 부산저축은행 수사에 착수한 지난 3월만 해도 홀연히 캐나다로 떠났던 박씨가 돌연 귀국한 점은 어느 정도 신변정리가 끝나 입을 열기로 마음 먹은 게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관심의 초점은 박태규 씨의 입에서 나올 유력인사의 폭과 깊이로,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중수부, 朴의 아킬레스건 잡았나=5개월 가량 도피생활을 해 온 박씨가 자진 귀국한 점에 우선 눈길이 간다. 검찰은 그간 캐나다 법무부에 범죄인 인도청구를 하고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을 통해서도 공개수배를 했다. 그러나 이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조기에 신병확보를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시간은 흘렀고,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조차 “(박태규를)안 잡는 거냐 못잡는거냐”며 질책했다.
수사 착수 5개월을 넘기면서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장 등 60여명을 기소했지만, 부산저축은행그룹의 오랜 비리를 눈감아 준 유력인사들에 대한 수사 열쇠를 쥔 박태규씨를 잡지 못한 탓에 수사 성과가 미흡하다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이에 신임 한상대 검찰총장은 박씨 신병확보를 위한 전담팀까지 꾸릴 것을 지시했다. 사실상 총력전으로, 박씨 관련 주변 정보를 광범위하게 입수해 이를 토대로 그를 압박해 스스로 걸어 들어오도록 하는 방법을 썼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검찰 안팎에선 캐나다에서 유학 중인 박씨의 둘째 아들 등 가족 관련 ‘카드’로써 돌아올 마음이 없는 박씨를 옥죈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박태규 리스트’ 메가톤급 파장 오나=자신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가 예정돼 있음을 알면서도 귀국 비행기편 등을 검찰에 알리며 자진 귀국했다는 사실은 수사에 협조할 준비가 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20여년간 여의도 정치권 인사는 물론 언론인들과도 광범위한 인맥을 쌓았던 그가 부산저축은행과 관련한 비리에 입을 열 작심을 한 것이라는 추론도 무리는 아니다.
검찰은 박태규씨의 자진 귀국에 앞서 그와 친분을 쌓았던 인물들을 상대로 저인망식 조사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검찰 자체 조사에 더해 박태규의 입까지 열리면 매가톤급 파장이 일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
실제로 검찰은 박씨와 지난해 전화통화를 한 기록이 남은 인물들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마쳤다. 아울러 김양(59ㆍ구속기소) 부산저축은행 부회장을 통해 박태규씨가 이 은행 유상증자 때 삼성꿈장학재단과 포스텍으로부터 각각 500억원씩, 총 1000억원을 투자받는 데 영향력을 미쳤고, 그 대가로 박씨는 17억원을 받아갔다는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검찰 수사는 이에 따라 박씨가 챙긴 걸로 알려진 ‘17억원’이 누구에게 흘러갔는지를 규명하는 데 초점이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미 첩보를 통해 박씨가 정치인과 금융 당국 고위관계자와 접촉한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이 현재까지 맞춰놓은 퍼즐이 박태규의 입을 통해 더욱 구체성을 띨 수 있을지 주목된다.
<홍성원 기자@sw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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