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름세가 주춤했던 대한민국 식탁물가에 다시 적신호가 켜졌다. 중부와 남부를 오가며 들이붓는 물폭탄성 장마 때문에 채소와 과일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배추나 상추 등 일부 채소류는 최근 일주일 새 가격이 2~3배까지 뛰는 등 장마 물가가 폭등의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엽채류는 보통 일주일 단위로 새 상품이 들어오긴 하지만, 장마 이후의 기온에 따라 작황이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어 장마 물가의 여파는 길어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장마의 여파가 계속될 경우 과일 선물세트 가격이 오르는 등 추석 상전에 타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통업체는 일찌감치 전국 각지의 상품성 있는 과일 확보에 나서는 등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물폭탄 맞은 장마 물가 고공행진 = 장맛비가 남부지방을 강타하면서 농수산물 시세가 급등하고 있다. 거듭되는 폭우 때문에 생산 물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판매하는 배추는 1포기에 지난달 2700원이었던 것이 지난 10일 기준으로 5700원까지 올랐다. 배추는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가격이 낮아 일부 농민들이 밭을 갈아엎을 정도로 농심(農心)을 애타게 했던 품목이었는데, 몇 주 사이에 가격이 2배가 넘게 뛰어올랐다.
상추는 100g에 450원이었던 것이 1333원으로 3배 가까이 올랐다. 집중 호우의 여파를 겪었던 엽채류들이 매장으로 본격적으로 출고되기 시작하는 오는 14~15일께에는 장마로 인한 고물가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비 때문에 바다 조업이 중단되면서 수산물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지난달 1마리에 1800원 하던 국산 냉장 오징어는 2300원으로 가격이 올랐다. 이마트 용산점도 1950원 하던 오징어 가격이 2680원으로 껑충 뛰었다.
수산물의 경우 날씨가 좋아져 다시 조업을 나가기 시작하면 바로 물량 회복이 가능해 상대적으로 큰 부담이 없다. 오히려 큰 비가 온 후에는 바다 밑에 가라앉아있던 플랑크톤이 바다 위쪽으로 떠오르면서 먹이감이 많아지기 때문에 수산업에는 호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채소류는 장마가 지난 후에도 날씨에 따라 생산량 회복이 어려울 수도 있어 고물가 여파가 장기화될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비가 그친 후에 폭염이 찾아오면서 밤 기온이 27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면, 엽채류 잎이 녹아내릴 정도로 흐물거리는 등 상품 가치를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땅이 다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비가 다시 내리면 채소의 뿌리가 썩어 역시 매장에 출하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고 덧붙였다.
▶장마는 길고 명절은 이르고…추석 고물가 후폭풍 우려 = 긴 장마에 애가 타는 것은 농민 뿐 만이 아니다. 추석을 목전에 두고 있는 유통업체에도 일찌감치 초비상이 걸렸다.
긴 장마로 인해 이른바 ‘맹탕 과일’이 넘쳐날 수 있는데다 값까지 폭등하는 기현상이 계속되면 추석 대목에 과일 상전은 기대를 접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통가에서는 이미 이번 장마 전 부터 올해 평년보다 추석이 이른 탓에 명절을 즈음한 과일 작황이 시원찮을 것으로 예상하고, 일찌감치 물량 확보에 발벗고 나섰다. 농가에서도 이른 출하에 상품 품질을 맞추기 위해 영양제 투입 등 백방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폭우’라는 복병을 만난 탓에 이 같은 노력은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상품 출하 자체를 걱정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사전 계약 등으로 물량을 맞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현재로선 크기나 당도 등 상품의 질이 담보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올해 과일값은 지난해보다 큰 폭으로 오르고, 제대로 된 과일 보기도 어려울 전망”이라고 전했다.
나물 등 제사상에 오르는 채소류는 추석을 앞둔 1~2주간의 작황이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가격을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유통가에서는 널뛰듯 들쭉날쭉한 배추 가격에 대해 우려를 보내고 있다. 때문에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올해 추석상 비용이 예년에 비해 30% 이상 높아질 수도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이래저래 서민들 살림살이만 팍팍해지고 있다.
<도현정 기자@booung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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