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는 만병통치약일까 아니면 되레 갈등만 고조시키는 악수(惡手)일까. 무엇이 됐든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사회의 바람직한 조정 방식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 노사 위언들이 1일 동반 사퇴했다. 이에 앞선 29일에는 수사권 문제를 두고 국회 법사위원회의 결정에 불만을 품은 검찰 수뇌부가 집단 사의를 표명했다. 대한적십자사의 헌혈사고 문책 인사에 전국 16개 혈액원 의무관들의 집단 사퇴도 가시화되고 있다. 최저임금, 수사권, 혈액 모두 민생과 치안, 그리고 국민의 건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의 일이다. 하지만 툭하면 사퇴라는 비장의 카드를 내놓는 이들에게 민생은 먼 나라의 이야기다.
▶아쉬울 것 없는 ‘사퇴’…아쉬움 많은 국민들=최저임금위원회의 한국노총 소속 근로자 위원 5명과 사용자 위원 9명은 1일 오전 회의에서 양측이 제시한 최종 협상안에 서로 반발, 위원직을 사퇴하기로 했다. 전체 27명의 위원 중 14명이 사퇴키로 함으로써 표결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최저임금위원회 노사 위원들이 동반 사퇴하는 것은 전례없는 일이다.
근로자 위원들은 “저임금 근로자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최저임금 협상에 더 이상 참여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사용자 위원들은 “영세기업을 위협하는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미 지난달 29일로 설정된 법정기한을 넘긴 상황이고 위원들의 집단 사퇴까지 더해져 내년도 최저임금 협상이 언제 이뤄질지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노동계와 재계의 힘겨루기에 등이 터지는 건 국민들이다. 난데 없는 사퇴로 상당 기간 최저임금 협상이 파행을 맡게됐음에도 위원들에겐 어떤 책임도 묻기 어렵다.
국회 법사위원회의 검경 수사권 관련 형사소송법 개정안 처리에 반발해 홍만표 대검 기획조정부장 등 검찰 수뇌부가 집단 사퇴한 일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집단 사의표명은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을 국회 법사위가 수정한 데 대한 반발과 지도부로서 책임을 지겠다는 뜻으로 풀이되지만 일각에서는 ‘아쉬울 것 없는 사퇴로 괜한 폼만 잡고 있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사퇴 이후 대형 로펌행은 떼 놓은 당상인 검찰 수뇌부가 마치 결연한 결정이라도 한 듯 행동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달이 넘는 시간 동안 수사권 갈등으로 집단행동을 불사하는 등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사회를 혼란케 한 점에 대한 책임과 사과는 찾아볼 수 없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 “집단사퇴는 기득권 유지 위한 위협수단”= 전문가들은 집단 사퇴가 민주주의를 저해하며 올바른 타협의 절차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집단적 힘을 과시하는 저항의 형태는 바람직 하지 않다. 공적인 일을 다루는 사람들이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려고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말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집단사퇴는 그 성격마다 다른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이번 검사장들의 집단사퇴는 일종의 기득권층이 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위협수단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사퇴는 집단이기주의이며 민주주의를 크게 저해한다는 의미에서 부정적이다”고 설명했다.
<박수진 기자@ssujin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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