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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호의 전원별곡]제3부 전원일기(16)농약이라고요? 남용하면 농독(農毒)이지요
만약 담배를 ‘독가스’ 또는 ‘살인가스’라고 부르면 어떤 반응들이 나타날까? 

아마 담배를 기호품으로 여기는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당연히 반발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담배에 중독되지 않았거나, 흡연을 채 시작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섬뜩한 경고성 표현 때문에 담배를 멀리 하지 않을까?

필자가 그랬다. 담배를 막 입에 댄 대학 신입생 시절(1982년), 당시 교양과목인 철학 교수님께서 “담배는 독가스이며 독가스는 사람을 죽인다. 그런데 나라에서 독가스를 팔아먹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당부했다. 필자는 그 즉시 담배를 끊었다. 독가스를 돈 주고 사 피울 이유는 없으니까.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도 ‘독가스(그 교수님 표현을 빌리자면)’에 대해 여전히 관대하다. 미국이 금연을 유도하기 위해 내년부터 담뱃갑에 중독성을 경고하는 문구 외에 담배의 해악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충격적인 이미지(사진, 그림 등)를 싣도록 의무화했지만, 우리나라는 관련 법안이 발의된 지 3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OECD 최고의 흡연국가로 전락했다.

우리나라에서 흡연만큼 이나 관대한 게 시골에서의 농약사용이다.

먼저 ‘농약(農藥)’이란 표현 자체가 지나치게 관대하다 못해 사람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갖게 하는 것 같다. 농약의 사전적 의미는 ‘농작물에 해로운 벌레, 병균, 잡초 따위를 없애거나 농작물이 잘 자라게 하는 약품’이다. 인체에 해롭고 자연환경을 오염시키는 부정적인 면 보다 농작물을 잘 자라게 하는 긍정적인 면만 지나치게 강조됐다. 이런 잘못된 관대한 표현이 무절제한 농약남용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사회에서 농약이 문제가 되는 것은 주로 최종 생산된 농산물 먹거리에서 잔류농약이 기준치를 초과했을 때다. 또 이따금 도시 아파트 단지 내 조경수나 잔디에 뿌려진 농약이 뒤늦게 ‘맹독성’인 것으로 밝혀지기라도 하면 야단법석이 일어난다. 신문, 방송 등에선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정작 농촌에서 시도 때도 없이 광범위하게 살포되는 농약 남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아니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얼핏 농사짓는데 필요한 ‘약’이니 문제될 것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농약의 원천적인 문제는 농촌에서의 오남용에서 비롯된다.

최종적으로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먹거리의 과다한 잔류농약 부터가 농사지을 때 농약의 남용 때문이다. 이는 또한 물과 공기, 토지를 오염시켜 물 좋고 공기 좋다는 시골생활에도 치명적인 ‘독(毒)’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시골 전원주택과 농가주택은 농지와 최소 1~2면은 접해 있다. 외따로 숲속 오지에 집을 짓고 살지 않는 한 농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농지에 포위된 전원주택은 시도 때도 없이 뿌려대는 농약 냄새 때문에 창문을 열어놓기 힘든 때도 많다. 여기에 축사와 소똥 등 두엄냄새 또한 전원생활의 걸림돌이다. 이런 이유로 시골에서 다시 도시로 발길을 돌리는 사례가 드물지만 없지는 않다.

이렇듯 오로지 더 많은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농약을 남용하게 되면, 이때부터 농약은 ‘약’이 아닌 ‘독’으로 변한다. 실제 농약은 그 용도가 잡초나 벌레를 죽이는 것이다. 잘못 먹거나 마시면 사람에게도 치명적이다.

최근 농약을 청소년에게 통신판매하거나 전화로 구입을 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농약관리법 개정안’이 의결된 것도 자칫 농약이 독으로 잘못 쓰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주한미군의 고엽제는 연일 사회이슈가 되는데, 왜 농촌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제초제 등 농약에 대해서는 당연시할까? 왜 이렇게 농약에 대해 관대할까? 지금부터라도 농촌의 농약 남용에 대해 그 심각성을 되짚어 보고 대책을 마련해야한다.


농약은 인체에 유해할 뿐 아니라 공기, 토지, 물을 오염시켜 인간에게 치명적인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따라서 농약남용에 대한 대책은 먼저 농촌에서부터 그 남용에 대한 규제와 계도가 이뤄져야 한다.

금지된 농약을 팔거나 사용하면 한층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사용이 허용된 농약이라도 농약을 뿌리기 전에 최소한 해당 논밭의 인접 주택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는 사전에 이를 통보토록 하는 ‘농약살포 예고제(?)’ 도입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시골에서 가장 많은 농약을 뿌려대는 게 인삼밭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인삼밭의 경우 6,7년 만에 수확하고 나서도 이후 몇 년간은 밭으로 사용하기 어렵다고 한다. 워낙 땅이 황폐해져 다른 작물을 심어도 소출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인삼밭이 아무런 제한 없이 시골마을 주택가 옆에 마구잡이로 들어서고 있다. 인삼밭처럼 농약을 많이 사용하는 작물의 경우 마을로부터 일정 거리를 띄워 재배토록 제한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

농촌에 전원주택 입지를 구하는 이들 또한 농약남용을 염두에 두고 터를 마련해야 한다. 겹겹 농지에 포위된 또 다른 농지를 사서 이를 대지로 전용해 집을 짓는 것은 금물이다. 집을 둘러싼 농지에 뿌려지는 농약 냄새는 전원생활에 대한 환상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따라서 집이 들어설 부지의 1~2면은 농지가 아닌 산에 접한 터를 구하는 게 좋다.

농약은 농작물에는 ‘약’이지만 인간과 땅에게는 ‘독’이다. 그래서 유기농법, 자연농법 등 대안농법이 확산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농약을 적게 쓸수록, 아니 안 쓸수록 좋다면 이름부터 경고성 표현으로 고쳐 불러야 하지 않을까? ‘농약(農藥)’이 아니라 ‘농독(農毒)’이라고…

(헤럴드경제 객원기자,전원&토지 칼럼리스트,ihpark33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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