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가 무뢰한 같은 상대에게 다짜고짜 얻어맞는다. 당신이 그 아버지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영화 ‘인어베러월드’에서 아버지는 상대에게 경멸적인 시선만을 남기고 뒤돌아선다. 하지만 아버지의 치욕을 목격한 아들은 ‘복수’을 원한다.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을 받는 아들에게 ‘정의’란 ‘복수’이고,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을 폭행한 상대를 다시 찾아간다.
덴마크 영화 ‘인어베러월드(In a better world)’는 ‘폭력의 악순환’에 대한 성찰을 탄탄한 드라마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종족 간 학살이나 전쟁 같은 거대한 폭력부터 매우 은밀하게 벌어지는 아이 간의 일상적 힘겨루기까지 관통하는 복수와 정의라는 주제를 다뤘다.
크게는 세 인물과 그들이 처하는 윤리적 딜레마를 중심에 놓는다. 먼저 중년남자 안톤(미카엘 페르스브란트)이 있다. 부인과 아들을 덴마크에 두고 아프리카를 오가며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의사다. 영화에서 특정 지명이나 분쟁의 원인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가 봉사활동을 펼치는 아프리카는 모래폭풍이 부는 난민촌으로 종족 간 학살이나 정부군-반군의 전투로 끊임없이 양민이 희생되는 곳으로 보인다. 지역을 장악한 민병대는 노약자나 부녀자는 물론이고 임신부까지 잔혹하게 죽이는, ‘인두겁을 쓴 악마’로 묘사된다. 양민을 보살피던 안톤에게 어느날 다리를 다친 민병대의 대장이 치료해 달라며 찾아온다. 안톤은 과연 이 악마를 위해 메스를 들 수 있을까.
안톤의 10살 된 아들 엘리아스(울리히 톰센)는 학교에서 상습적인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소년이다. 어느날 크리스티안(윌리엄 요크 닐센)이라는 당돌한 소년이 전학을 오고, 엘리아스가 조롱받고 얻어맞는 모습을 목격한다. 엄마를 잃고 세상과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으로 가득한 크리스티안은 또래보다 훨씬 성숙하고 과감하다. 크리스티안은 엘리아스에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복수하고 상대를 제압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와 덴마크에서 자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안톤은 이유없는 시비에 걸려 아들이 보는 앞에서 다른 남자에게 얻어맞는 행패를 겪게 되고,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결국 전쟁을 낳을 뿐”이라며 주먹다짐을 피하지만 아들 엘리아스와 친구 크리스티안은 자신들만의 복수에 나선다.
안톤과 엘리아스, 크리스티안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덴마크와 아프리카, 학교와 분쟁 현장을 오가며 각 인물이 처하는 갈등과 감정을 극적으로 전달한다.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라는 묵직한 주제를 대중적인 화법과 짜임새가 좋은 드라마로 풀어낸 작품이다. 올해 미국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석권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한국영화엔 복수와 응징 소재의 작품이 유난히 많았는데, 국내 관객에겐 한국영화와 다른 시선과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성과 대중성에서 덴마크 최고로 꼽히는 여성 감독 수잔 비에르가 메가폰을 잡았고, 특히 아역배우의 연기가 뛰어나다. 12세 이상 관람가. 23일 개봉.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